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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yu Mar 19. 2023

모독

'석사랑' 책모임

1분 감상평 및 평점

작가 박완서가 보는 세상이 뭐 그리 특별하겠냐만은 그녀의 문체나 표현 방식이나 삶을 대하는 태도의 아취가 참으로 은은하다. 내가 그녀의 작품을 처음 만났던 것은 고등학생 교과서다. 별 감흥이 없던 것이 수필을 읽으며 그녀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박완서, 이어령 같은 거장의 머릿속을 활자로 들여다보는 것 자체가 황홀하다. 결국 작가가 해야 하는 일은 익숙한 것을 새롭게 서술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닐까. 모독을 읽는 내내 나는 그녀의 일행과 함께 티베트를 여행했다. 내가 고산병에 걸린 듯 숨이 가쁘고 아름다운 절경을 보고 황폐한 민둥산을 보고. 단신을 이끌고 홀로 여행하고 싶다는 혈기가 스멀스멀 일었다. 그게 스멀스멀 올라올 수 있는 성질인지는 모르겠으나 떠나고 싶다는 생각, 내 자리를 지키는 것이 버겁다는 생각이 차올랐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그 누구와도 연결되지 않은 채 잠시 쉬고 싶다. 서적을 감상하는 것을 넘어 내 삶에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을 일깨워 줬기에 5점.


인상 깊었던 장면

고도가 높아질수록 나무의 키가 낮아져 관목숲이 되고 식물한계선을 넘으면 모진 풀밖에 못 자라고, 이끼만 남다가 아무것도 못 자라는 땅이 된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나무보다 풀이 강하고 풀보다 꽃이 더 강하다는 건 처음 알았다. 풀도 없는 데서 꽃을 보게 되다니. 놀랍게도 그 붉디붉은 꽃은 나팔꽃처럼 생긴 통꽃인데, 꽃이 한 송이씩 땅에 직접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왜 사람은 보이는 게 이리도 중요할까. 시각으로 받아들이는 정보가 생각을 지배하고 생각이 행동과 태도를 결정한다. 누가 봐도 튼튼해 보이는 나무는 땅의 도움 없이는 설 수 없는 둔중하고 버거운 존재였다는 사실. 반대로 손으로도 꺾을 수 있는 꽃이나 풀이 척박한 땅에서도 뿌리를 내릴 수 있는 끈질긴 생물이었다는 사실이 나를 부끄럽게 한다. 땅에 단단히 뿌리를 내린 것 같으나 결국 땅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인 나는 곧 멸종하고 말 나무다. 하나님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나 마치 홀로 서 있다는 착각 속에 살아가는 어리석음의 대명사다.

사랑, 연민, 자비 등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공통의 정서라고 해서 그 사랑법까지 똑같을 수는 없지 않을까.

 교회에서 포스트 모더니즘과 싸우려는 시도가 어리석어 보인다. 답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말이 거슬리는 이유가 뭘까. 통제력을 잃은 교회가 사회를 비판하려는 잣대일 뿐이다. 정해져 있었던 답들은 언제나 옳았던가. 교회가 제시했던 답들, 밟아 왔던 숱한 과거들 속에서 추잡스러웠던 적이 하루 이틀이 아님에도  과거에 대한 청산을 올바르게 하지 못한다면 희망이 없다. 포스트 모더니즘이 강한  아니라 교회의 아집과 고집이  이상 힘이 없는 것이다. 진리와 정답은 있다. 그러나  외의 문제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태도는 선을 넘은 것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에도 한계가 있다. 모든  정답일 수는 없다. 선을 훌쩍 넘은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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