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받는 만큼만 일하고 싶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전담이 딱 그렇다. 담임교사와 급여 차이가 다소 나는 게 처음엔 불만이었지만 이제 막 이 주 정도 전담을 하고 나니 난 평생 교과 전담 교사만 하고 싶다. 기간제 시절 때, 아직 일 년차라는 딱지를 붙이기도 전에는 기간제 교사의 고충을 뼈저리게 느꼈다. 아무렴 뭘 하든 어렵기 마련인 시기였으니. 그러나 육 학년 담임을 뺀질나게 한 뒤 한층 성장한 나로서 체육/도덕 전담은 파라다이스다.
전담이 최고라는 말을 입에 달려면 조건이 하나 필요하다. 학년에 반이 적어도 세 개 이상인, 크기가 중간 이상인 학교일 것. 이하는 전담도 꽤 피곤할 법하다. 학교가 크면 클수록 수업 준비는 적어진다. 수업을 하나 준비하면 그걸로 네다섯 반 혹은 여덟아홉 반 수업하면 된다. 그걸 주에 세 번 혹은 두 번 하고 나면 한 주가 끝이다. 그러니까 수업 준비 자체가 적으니 일이 팍 주는 느낌이다.
작은 학교는 전담의 이점이 줄어든다. 자잘하게 모든 학년을 다 들어가면 한 주에 수업을 여섯여덟 개 준비해야 하고 과목도 다르다. 퍽 피곤하다. 그럼에도 전담의 장점은 잔존한다. 상담 업무가 없다는 것만큼 속이 시원한 게 있을까. 학생, 학부모 상담이 없으면 골머리 썩힐 일도 없다. 고구마 천 개 먹은 채 웃음을 유지하며 훈육하지 않아도 된다. 진상 학부모 연락 안 받아도 된다. 학폭과 전혀 연관이 없다. 학년 업무도 없다. 무엇보다 방학 시즌이 다가오면 지옥 같은 생기부로부터 자유롭다. 쓰고 보니 잔존 정도가 아니라 여전히 넘치는 화수분이다.
물론 담임 수당을 못 받는 점, 성과급은 최하점이라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돈으로 환산하면 약 300만 원 웃도는 수준이다. 한 달치 월급을 못 받은 셈이다. 학사 운영이 담임 위주로 돌아가다 보니 아무래도 교내에서 소외감을 느끼기도 한다. 외롭다는 사람도 봤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는 텅 빈 교실에 혼자인 그 느낌을 사랑한다. 시끌벅적하던 오전과 고요한 오후의 대비 덕분에 적막의 소중함, 외로움의 귀함을 사무치게 느낀다. 아름다운 것을 보면 눈물이 찔끔 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왜 다들 높은 급지의 학교로 오려고 하는지 알겠다. 첫 발령지가 '다'급지라 그것이 기준이었는데 '나'급지의 학교는 모든 것이 완벽했다. 떨어지는 햇살 한 줌, 달콤한 공기. 아, 영원히 '가' 혹은 '나'급지에서 근무하고 싶어라. 그래야 딱 내 월급만큼만 일하는 건데. 공평한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