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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yu Mar 26. 2023

졌지만 후련합니다

 12명의 선수가 출전했고 첫 경기는 부전승했다. 나의 두 번째 경기이자 7번 매트의 스물세 번째 경기, 2:0 패배. 엄밀하게 따지면 1승 1패이나 사실 광탈이나 다름없다. 6분 경기 중 3분 때부터 들었던 생각,

 '와, 이거 두 번은 못 하겠다.'

 생애 첫 스포츠 경기였고 큰 시합이었다. 30년을 살아오며 숱한 도전의 기회를 제 발로 걷어찼는데 격렬하게 살아가고 싶지 않았던 바람에 그랬던 것이 문득 후회스러웠다. 이렇게 후련하고 마음을 가볍게 만드는 도전을 왜 이제야 경험했을까. 그럼에도 두 번은 못 하겠다고 느꼈던 이유는 치열한 싸움이 진행되는 6분 동안에 느껴진 어지러움과 목에서 느껴지는 단내와 부예지는 시야와 지척의 소리가 까마득하게 들리던 그 감각 때문이다. 6분이라는 시간이 이렇게 길었던가. 동그란 시계를 아주 잘게 쪼개어 아주 기다란 직사각형 하나를 만들 듯 6분이라는 시간이 초 단위로 분해돼 넓은 7번 매트를 꼼꼼하게 메꿨다.

 오십  오십 가드 상황. 나는 일어서 있었고 상대는 누워 있었다. 어둡다고 느껴졌던 경기장이 환해졌던 때가 그때부터였다. 수용하는 광량 변화가 감각으로 느껴질 정도로 생경했다. 뒤이어 들숨에 섞이는 단내에 두려움과 패배감이 조금씩 차올랐다. 승리에 대한 집착보다 어서 끝내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외부의 위협과 무관하게 몸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눈으로 확인할  없으니 마주하는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을 수밖에. 더욱이 머리가 멍해져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숨을 쉬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였으니 '혈액'이라는 막연한 공포의 크기가 불어났던 당시의 상황은 경험해 보지 않고는 모르리라. 여기저기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는 패스해야지! 이제는!"

 분명  세컨은 지척에 있었으나 한참 멀리서 세컨의 아우성이 들렸다. 오른손으로 상대의 오른 다리를! 오른 다리를! 분명히 잡았는데 열리지 않는 가드. 레그 드레그! 레그 드레그!  다리를 오른쪽으로 넘겨야 함에도 꿈쩍하지 않는 견고함. 나는 패배를 직감했다. 상대에게 어드벤티지 1점이 있다는 것을 몰랐음에도 귓가에서 맴돌던 관원의 목소리,

 '0:0의 상황일 땐 더 어그레시브한 사람이 이겨요.'

 내가 했던 것이라곤 고작 가드를 풀려는 시도였다.  시도조차 비강호흡의 실패로 이어진 두통, 에너지 고갈, 근육통으로 인해  최고의 발악을 정말 보잘것없는 동작으로 치환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아, 이대로 무너지자.'

 나는 4초가 남은 상황에서 스윕을 당하고 2점을 내주게 됐다.

 경기가 끝난 뒤 한참을 자리에 앉아 물, 이온음료, 관원이 사준 우유를 먹으면서 회복에 전념했다. 차차 맑아지는 머리에 진심으로 훌륭한 경험이었다는 뿌듯함이 새겨졌고 다소 아쉬울 수 있는 마음은 홀로 운전하는 차 안에서나 느꼈지 경기장 안에서 만큼은 입꼬리가 내려오지 않았다. 모두의 격려와 다음 경기를 기약하자는 말에 웃기지 말라는 말로 일관했던 나는 경기 3분째 느꼈던 그 감각을 신뢰하기로 했다. 두 번은 없다. 두 번 할 일은 아니다. 적어도 내겐 그렇다.


 정신력 싸움이라는 말을 몸소 체험했다. 상대는 기술이 뛰어났고 나는 힘이 월등했으나  가지 가장  차이가 있었다면 나는 경기가 끝나기를 바랐고 그는 승리를 갈망했다는 점이리라. 그의 자질을 평가절하할 생각은 전혀 없다. 스포츠 경기에서는 기술이나 , 노력 같은 것을 능가하는 정신력이 승부의 판갈음이니 그것을 갖춘 그는  그대로 나보다  나은 선수였다. 더불어 호흡이나 전략이나 힘의 분배에서도 그는 유경험자 다운 면모를 보였다. 이기고자 했던 자만이 양심 없었다.

 아쉬움은 남지만 후회는 없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힘들었던 순간들이 떠오르며 매달로 보상받아야 마땅하다는 심리를 자극했지만 경쟁의 결과는 냉혹했다. 나는 딱 1승 1패에 어울리는 주짓떼로였던 것이다. 그것을 인정하는 일이 왜 이리도 어려웠을까.

 나는 문제를 직면하지 못하는 도망자였다. 어떤 일에도 감히 도전장을 내밀지 않았던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인간을 능력에 따라  줄로 세워놓았다고 봤을  내가 중간에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거북했다. 노력해도 중간인 야박한 인생과 무능력한 나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중간밖에  되는 혹은 그보다  못한 사람이라는 현실을 마주할 순간이 두려웠다.

 '내가 최선을 다하지 않아서 그래, 나는 더 나은 사람이고 더 잘할 수 있어.'

 직시하려는 시선 앞을 가로막은  어리석음.  장막을 걷고자  시합과 이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는 최선을 다했다. 그래, 나는 그것밖에  되는 사람이다. 중간에 거하는 인간. 특출 나게 잘하는  하나 없이 그저 그런 삶을 살며 고작   벌어 부자가 되길 꿈꾸는, 상위에 속하고자 하는 욕심 많은 사람이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성장하거나 후퇴할  제자리에 고정된 사람은 절대 아니다. 주짓수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그렇다. 직장, 주짓수, 작문 외에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모든 분야에서 마찬가지다.

 졌지만 후련하다. 나를 인정하는 일이 다소 아리긴 했지만  정도일  알았다면 더욱 열심히 살아   그랬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아프고 치열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시합 날처럼  뜨겁고 흥분되고 동공이 커지며 어질어질한 , 지루하지 않은 인생이었을 것이다. 늦지 않았다. 앞으로 살아온 세월만큼은 정정할 예정이니 전진하든 후퇴하든 뭐든  봐야겠다. 성취를 위해선 뼈를 깎는 고통이 수반될 것이다. 벌써부터 의욕이 떨어진다. 노력하는 만큼 결과가 뒤따라주지 않을 수도 있으니 여전히 도전에 소극적이다. 하지만 변화는 여기서부터 시작이지 않을까.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라는 서적이 떠오른다. 성적을 올리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작은 중학생이었던 내게 은사님께서 추천해 주신 도서였다. 아직도 마음속에 남은 한마디, 메이저 리그에서 꼴찌 한 것은 사실 대단한 업적이라는 위로. 아니, 꼴찌면  어떻냐는 안도감. 유난히 내게 엄격한 스스로가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는 것도 힘들었을 테지만 이제는 남들에게 관대한 것의 반의  만이라도 나를  아끼고 격려하며 도전하자.

 서른 하나, 여전히 어리고 혈기왕성한 나는  번의 제대로  실패를 통해서 마음속에 사는 작은 중학생이 조금은  자라고 위로받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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