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노보노의 인생상담
보노보노 친구들의 공통점은 누군가에게 "미움받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지 않는다는 것.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독서에 빠지게 된 계기는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와 같은 느낌의 에세이 덕분이었다. 여러 상황 속에서 내가 어떤 감정적 대우를 받든, 내 마음속에 이는 어느 형태의 감정이든 사실은 다 괜찮다는 토닥임에 감동받아 비슷한 에세이를 여러 권 읽었더랬다. 고등학교 3학년쯤 되면 뭐든 힘든 시기이나 나는 2학년 때부터 슬럼프를 겪었다. 방황을 그때서야 시작했고 따뜻한 위로가 아니었다면 시험지가 꽤나 무거웠을 테지.
이후 대학생이 돼 '시 읽기 좋은 날'을 시작으로 독서의 폭을 넓혔고 제대 후 한 주에 한 권 읽기를 지키려 노력했다. 그 다짐을 지켜온 지도 이제 사 년이 조금 넘었고 독서 후 기록하는 습관을 남기게 된 건 어언 일 년이 지났다.
위로가 지나치다고 생각했던 것도 그즈음이다. 보노보노에 이어 곰돌이 푸 외에 다양한 만화 캐릭터가 등장하며 뭐든 괜찮다는 식의 생각들이 도서건 SNS건 즐비했다. 신자유주의를 담지하는 문제 해결법과 사고방식이 대세인 건 알겠는데 조금 지친다는 의견이다.
그럼에도 보노보노 시리즈를 집어 들게 됐던 건 친한 형의 집들이에서 책을 선물받았던 탓이 크다. 선물이라 거절할 수도 없었고 '책을 좋아한다길래'하며 주신 거라, 내 기호를 생각해 줬다는 게 감동이라 군말 없이 받았다. 받고 읽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그 성의에 보답하는 방법이 최선을 다해 읽고 이렇게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리라 생각했다.
기실 두 권 모두 보노보노가 표지에 대문장만하게 그려져 있어 휴대하며 짬을 내 읽기 부끄러웠다. 제목도 다소 열없는 탓에 밖에서 읽을 땐 연신 무릎 위에 올려 표지를 감추기 바빴다. 베스트셀러였다 그 자리에서 내려온 지 꽤 지난 도서라 더욱 그랬다. 만일 내가 위로 에세이에 열린 마음이었다면 자랑스럽게 펼치고 다니며 제법 추천했을 내용이긴 했다. 사람에게 치여서 나에게 자신이 없어졌을 때나 이런 저런 이유로 자존감이 다소 떨어졌을 때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좋아 보였다.
위로에도 정도와 시기가 있다. 네 감정은 틀리지 않았어, 누가 미워하든 네 방식을 고수해 등의 태도가 이미 만연한 세상이다. 그런 세상에 질려버린 사람이라면 책이 너무도 가볍게 느껴질 수 있다. 바라기엔 다음번에 주목받는 위로 에세이는 그 반대가 되었으면 싶다. 내가 기준이 아니라 우리가 기준이 되는 위로, 건강한 공동체가 다시금 강조되는 삶의 방식이 휘황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