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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yu May 19. 2023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자화상을 그리듯이 쓴 글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작가의 말-


 어느 부분에선 기시감이 들었다. 꿈속에서든지 작품에서든지 한 번은 겪어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줄곧 고개를 갸우뚱했다.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정확하게 예측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분명 읽은 기억이 있었지만 어느 작품인지 콕 짚을 수가 없었다. 아마 박완서 씨가 쓴 어느 수필에서나 읽었던 내용이 아닐까 싶다.

 소설가에게 푹 빠지기 시작했던 계기가 소설은 아니었다. 박완서 씨가 쓴 수필을 여러 편 읽었는데 작가의 작가라는 말을 뒷받침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숱한 작품들을 읽었지만 박완서 씨의 수필만큼 편안하고 구뜰하게 얘기하는 작가는 없었다.


 기억에 의지하여 자신의 삶을 소설로 승화하는 과정은 자못 지난할 거라 예측한다. 어제 있었던 일이나 그때 들었던 감정을 소담 소담 써 내려가는 것도 한 자 한 자 조심스러운데 몇십 년 전이라니. 무엇보다 박완서 씨가 살았던 세월이 근현대사적 관점에서 보면 사료로써 가지는 가치도 없지 않으리라. 토지, 태백산맥과 비교하자면 개인적이며 따뜻하고, 무엇보다 양이 적어서 현대인에게 더욱 감명 깊은 소설이 아닐 수 없다. 


 박완서 씨와 소설로써 첫 만남은 '나목'이었다. 주인공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지만 박완서 씨 내면의 어떤 한 부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도 둘 중에 더 마음에 드는 걸 하나 골라야 한다면 나는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가 더 취향에 맞았다. 나이가 들수록 사건이나 갈등보단 일상과 평화에 더 친화적인 인간이 되어가는 것 같다. 어쩌면 지금 난 그런 시기를 맞이했을 뿐이며 인생이 또 한 번 굽이쳐 사건이나 갈등을 더욱 사랑하게 될 수도 있는 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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