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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yu May 31. 2023

디자인 트랩

레버를 누를 때 먹이가 안 나올 때도 있으니 쥐는 흥미를 잃고 레버를 덜 누르게 되었을까? 그렇지 않다. 예상과 달리 쥐는 레버를 더 열심히 광적으로 눌렀다.
-디자인 트랩-


 같은 학년 담임을 연이어 3년 하다 보면 학습 내용, 일 년 구성에 일정한 흐름이 생기기 마련이다. 해마다 조금 틀리긴 하지만 지방에는 아직도 중간방학이 존재하는데 겨울방학과 신학기 사이의 봄방학을 말한다. 중간방학이 있다는 말은 곧 1월과 2월 사이 적게는 2주 많게는 한 달 정도 수업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때 학생들은 책상에 앉기를 거부한다. 교사인 나 또한 그런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니기에 억지로 수업을 진행하는 게 죄스럽다. 그렇다고 마냥 놀릴 수도 없는 게 놀이에도 한계는 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각 과목마다 한 단원씩은 남겨놓아야 겨울방학 끝이 괴롭지 않다.

 교과서 제작자도 이와 같은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기에 마지막 단원은 흥미 위주의 활동이나 재구성하기 편하다. 국어의 경우 감상문을 쓰는 활동이 주인데 나는 이때 꼭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한 편이 있다. '소셜 미디어'라는 넷플릭스 제작 작품이다.

 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학생들의 반응이 제각각이지만 내가 심각해지는 순간이 있다. SNS에서 배운 내용을 그대로 따라 말할 때, 손절이라든가, 지나치게 쿨하다든가, 주식 등 철없는 청년들이 하는 걸 그대로 따라 할 때 간담이 서늘하다. 경계가 사라지는 초연결 시대라지만 말랑말랑한 뇌 속에 뾰족한 가시들을 잔뜩 박아 넣을 필요는 없다.


 디자인 트랩을 읽는 내내 '소셜 미디어'라는 작품이 떠올랐다. 아니나 다를까 '소셜 미디어'에서 인용한 문장이 보였을 때 반가웠다. 바로 상품의 대가를 치르지 않는다면 당신이 상품이라는 말. 학생들은 이 말을 보면서도 딱히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니까 피가 터지고 액션이 화려한 게 아니다 보니 다큐멘터리를 꼭 시청했으면 하는, SNS를 열렬히 사용하는 학생들은 거들떠도 안 보는 게 속상했다. 그들에게 본 도서를 손에 꼭 쥐어주며 한 번 읽어 보라고 얘기해 주고 싶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도서에서 소개하는 다양한 예시들을 보며 학생들에게 따로 수업을 해도 좋을 듯싶었다. 따로 수업 자료를 준비해 가르쳐도 좋을 것 같았다.


 나는 얼마 전에 SNS를 삭제했다. 포스팅했던 사진들은 아까워 계정 자체를 지우진 않았지만 더 이상 접속하지 않는다. 평소에 연락이 닿지 않지만 마음 한 구석에 언제나 좋은 친구인 사람들의 소식을 듣는 창구가 사라졌지만 삶은 더욱 풍성해졌다. 삭제를 마음먹기까지 유일하게 발목을 잡는 요소였으나 사실 별거 아닌 변명이었던 것이다.

 사물과 인간을 넘어 인간끼리의 초연결 사회가 과연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할지 더욱 고민해 봐야 할 때다. 문화가 기술을 따라가지 못하는 문화 지체, 기후가 여태껏 마주하지 못한 속도로 변하며 탈이 났듯 기술을 따라가지 못하는 문화 때문에 사회는 충분히 병들었다. 잠시 멈춰 가야 할 길을 점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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