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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yu Jul 06. 2023

집단 착각

결과를 보니 응답자 중 97퍼센트는 A가(자아 성취)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92퍼센트는 대다수가 B를(돈, 명예) 답으로 택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집단 착각-


 군대에서 있었던 일이다. 자유롭게 대화가 오갈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니 불만은 산적하기 마련이고 나의 경우 맞선임의 시답잖은 잔소리가 탐탁지 않았다. 조금만 더 참자고 읊으며 맞후임이 오길 기다렸는데 마침내 등장한 그는 무신경한 표정에 듬직한 체격이라 좀 무작스러워 보였다. 다행히 진영이는 보이는 것과 생판 다른 순둥이였고 제법 평화로운 날들이 이어졌다.

 하루는 점심 식사가 끝나고 영양사님이 사무실로 나를 불렀다(나는 취사병이었다). 군 복무를 늦게 시작한 바람에 복무 중인 다른 병사들보다 3-4살 많았기 때문이었을까. 영양사님이 내게 비밀이라며 진영이 얘기를 털어놓았다.

 "진영이가 영훈이 때문에 울더라. 다른 사람은 다 좋은데 영훈이가 너무 힘들게 한다고."

  무뚝뚝하고 기계 같아 보이는 아이가  맞선임 때문에 울었다니. 행여 진영이가 취사병을 그만두겠다 선언하면 나는 새로운 후임을 뽑고, 가르치고, 기다려야 했기에 까마득한 것도 잠시,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웃고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이 기뻤다. 웃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영양사님과 방법을 모색하는 척 진지한 표정을 유지한 채 속으론 환호를 지르고 있었다.

 '내가 맞았다니! 영훈이의 잔소리가 똑같이 거슬렸다니!'

 하나일 땐 호젓하던 생각이 하나 더 늘었을 뿐인데 여간 든든한 게 아니었다. GOD의 촛불하나가 영 허무맹랑한 노랫말은 아니었나 보다. 촛불이 하나 켜지고 둘, 셋이 되다 어둠이 사라져 간다는. 우리 부대, 취사장의 어둠은 딱 그 정도였고 촛불 두 개로도 충분히 밝게 빛나고 있었다.


 댓글은 읽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끊임없이 다른 사람의 생각이 궁금해지는  가지 논쟁거리가 있다. 교권, 이민자, 여성, 아이  흔히 말하는 소수자에 대한 기사나 유튜브 영상을  때마다 인력이라도 작용하는  댓글창을 확인한다. 온갖 험악한 말들이 오가는 포화 속에서 답답함에 가슴을 친다. 그중 눈에 띄는 댓글, '가만히 있으면 되는데  나서냐' 말은 안쓰럽기까지 했다. 그들이 사는 세상은 얼마나 강퍅하길래 이다지도 배타적일까. AI로봇의 분탕질이라고 믿고 싶은 댓글 아래에는 너도나도   없이 같은 종류의 말들 뿐이었다. 그러다  어느 기사나 영상 아래에는 응원이 넘쳐나기도   보며 정치판에서 여론 여론 거리는  한낯 허섭스레기였구나 느꼈다.

 기술을 따라가지 못하는 문화의 게으름에서 여러 문제가 발발했고 심각한  양극화다.  도서는 양극화가 심화되는 세태의 원인을 '집단 착각'으로 지목했다. 집단 착각이란 사회에 속하려는 본성의 결과이나 문제는 사회가 가지고 있는 속성에 있다. 이는 도덕적으로 바르지 않거나 본인의 인지로는 비합리적인 사안이라 할지라도 맹목적으로 지키고 따르게 했.

 집단 착각은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를 병들게 한다. 그저 다수의 생각이라는 착각에 믿지 않았던 논리를 신뢰하고 심지어는 본래 자신의 신념인 양 여긴다니. 이걸 악용할 목적으로 댓글 생성 AI를 만들어 마치 다수가 A라는 의견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꾸밀 수도 있었다니. 선동에 이리도 쉽게 휩쓸린다면 책 뒷면 말처럼 집단 무지성이 어쩌면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소를 잃었다고 외양간을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23학년도 수학여행에서 사고가 났다고 24학년도 수학여행을 전면 취소해선 안 된다는 말이다. 나 같은 개인적인 인간도 공동체가 필요불가결한 요소라는 걸 부정하지 않는다. 그 공동체를 방치할 것인지 개선할 것인지는 우리에게 달렸다.

 "영양사님, 제가 영훈이랑 얘기해 볼게요."

 18년도 군번은, 의경은 더욱이 그게 가능했다. 내가 나이가 많기도 했고 영훈도 내 나이와 사회 경력을 무시하지 못했던 터라 무섭진 않았다. 오해하지 말았으면 싶은 게, 저녁 식사가 모두 끝나고 영훈에게 잠시 얘기 좀 하자했더니 영훈은 되려 '혹시 나 뭐 잘못했어? 그럼 꼭 말해줘'하며 귀여운 면모를 보였다. 우린 그만큼 관계가 돈독하기도 했다. 어쨌든 나는 영훈의 태도에 힘입어 진영과 내 입장을 설명했고 영훈도 잔소리보단 후임을 신뢰하기로 약속했다.

 나는 우리의 고결함이 댓글 따위에,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못난 편향에 휩쓸리지 않기를 바란다. 대한민국 국민은 5천만 명이고, 천 명이나 만 명 따위는 0이나 10에 들이뜨려져 모든 게 불만인 공동체일 뿐이다. 사랑을 잊기 위해서 새로운 사랑을 찾아 떠나듯 공동체에서 받은 상처도 마찬가지다. 정(正)연결, 저자가 제시한 바르게 연결되는 방법이 우리 사회를 더 건강하게 만들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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