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짓수를 시작했던 숱한 이유 중에 하나도 잘 싸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길거리에서 마주하는 싸움이 인생을 살아가며 얼마나 있겠느냐만 나는 적어도 내가 가르치는 학생을 모종의 위협으로부터 지키고 싶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초등학생을 위협하는 중고등학생이 몇이나 있을 것이며 그게 내 학생일 확률은 가능성이 얼마나 희박할까. 그러니까 나는 꿈이 큰 선생님이었고 그 꿈은 헛꿈이었던 건데 여태껏 주짓수는 그만두지도 못하고 오히려 인생의 낙이 되어버렸다. 다행히 무술을 배우는 것의 이점은 있었다. 요기로운 자신감이 생겨 날카롭고 단련된 생활을 하고 있는데 예를 들면 상사에게 객기를 부린다거나 회식을 가자고 하면 단호하게 거절할 수 있는, 혹은 그런 상상이라도 속 시원하게 한 뒤 '내가 참는다'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몸싸움 자체가 드물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싸움이 있다면 단연 초등학생 때다. 회고하자면 나는 선택적으로 분노했음이 분명하다. 싸움 속의 대상이 나보다 강한 사람은 아니었다. 순하거나, 해볼 만한 키 작은 동년배였고 우리 싸움은 우습게도 '누가 싸움을 더 잘하냐'를 판가름하기 위해서 시작됐다. 명예라는 보상을 건 두 번의 판이 벌어졌는데 한 번은 확실히 승리했고 한 번은 서로 다치는 바람에 중단됐던 기억이 있다. 이후에 누군가에게 맞거나 누군가를 때리지 않았다.
나는 평화롭게 살았고 또 평화를 지지했다. 일방적으로 토라진 적은 있었지만 친구 간 말다툼도 대학생 3학년 이후에는 그다지 떠오르는 게 없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잘 싸우고 싶다. 왜 여즉 잘 싸우는 데에 집착이랄까 집념 같은 게 남아 있는지 생각해 보면 제대로 싸워 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지 싶다.
뭐든 손뼉도 부딪혀야 소리가 난다고, 하다못해 말다툼의 소이를 따지는 경우에도 완전무결한 사람은 없을 텐데 나는 갈등 자체를 얼른 회피하고자 마음에도 없는 사과를 강행했다. 금요일이 문제였다. 딱히 사과할 마음 없이 분기탱천한 상태로 금요 기도회에 들어가면 어김없이 내 양심이나 그리스도인의 됨됨이를 들먹이는 하나님의 잔소리에 두 손 두 발 다 들어야 했다. 지는 게 이기는 거라는데 틀린 말은 아니지만 께름칙한 면이 없지는 않다. 결국 잘 싸워 본 경험이 없어서 잘 싸우고 싶다는 말은 변명에 불과했다. 나는 내 분노를 여기저기 침 튀기듯 흩뿌리길 바랐다. 그러곤 '나는 뒤끝 없어' 하고 새침한 표정을 지으며 쿨하게 뒤돌아서는 모습을 원했다.
세상에 원망스럽고 불만스러운 일은 천지사방에 널렸는데 내가 믿는 신이 자꾸 일을 보탠다. 미주알고주알 싫증이 나는 현실을 그분에게 뇌까리면 웅크리고 있던 십계명이 나를 자꾸만 생각의 의자에 앉힌다. 자연스럽게 나는 나쁜 아들이 되는데 금방 앉은 생각의 의자는 자못 익숙한 자리라 죄책감이 든다. 이 아버지가 시골에 있는 아버지와 자꾸 겹쳐 보여 문제다. 하나님은 왜 하필 자신을 아버지라 칭했을지 모를 일이다. 모르긴 몰라도 Dad issue라는 단어가 심심치 않게 들리는 걸 보아하니 나만 겪는 문제는 아닐 터.
그 대상이 사람이든 신이든 잘 싸우고 싶다. '싸움' 자체가 치명적인 결함을 야기하는 게 아님에도 가장한 평화로 기만하는 대처법에 한계를 느낀다. 속마음을 둘러싼 벽의 정체가 놀랍게도 '평화'라니. 평화, 남들이 내 인생에 간섭 말았으면, 내게 명령하지 말았으면, 내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았으면, 내 마음을 좀 알아줬으면, 내게 먼저 손 내밀어 줬으면, 나를 사랑해 줬으면, 평화.
주먹질을 하는 중에도 눈물을 흘리는 친구가 있었다. 눕혀 놓은 친구 얼굴에도 튀고 주먹을 휘두르는 회전력에 눈물이 여기저기 튀었는데 뭐든 감정이 격해지면 침이든 눈물이든 사방에 흩날려야 하지 싶다. 나도 오늘 다소 울고 싶었는데 눈물 카타르시스에 중독되지 않으려 꾹 참았다. 이러다 병나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