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함이 뭐 대순가. 내가 가장 꾸준하게 하는 일이 죽음을 생각하는 일인데. 초등학교 5학년 때였던가. 처음으로 창문 앞에 서 있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친구의 부탁으로 여자 친구와 헤어졌던 날이었다. 창문 앞에서 그리 청승을 떨 거였으면 그다지도 친하지 않은 친구의 부탁을 왜 들어줬으며 울기는 왜 울었고 한강물 라면은 왜 꾸역꾸역 먹었는지 모를 일이다.
그때도 그랬지만 고통이 두려웠지 죽음이 두렵지는 않았다.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들어올 때면 어김없이 나는 창문을 열었다. 십이 층 창문을 열어 아래를 바라볼 때면 이상하게 난 꼭 떨어져도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높지 않아 보여서, 추락사라는 게 왜 존재하는지 체감할 수 없었다. 머리로 이해하지 못하는 그런 나이는 아니었고 바보도 아니었다. 한번 떨어져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
그러나 떨어질 수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고층에서 떨어지는 건 꼭 어디가 부러져 움직일 수 없는 상태로, 나를 더 큰 무기력의 고통 속에 가둬둘 것 같았다. 그런 아픔을 딛고 일어선 사람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못하는 사람이라 달갑지 않은 결과를 마주할까 겁이 났다. 아버지의 트로피로써 언제나 유능해야 했던 나는 내가 바꿀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면 더욱 무기력했을 터.
오늘도 어머니는 아버지 앞에서 무기력했던 자신에 대해 토로했고 나는 서른을 먹고도 가족 앞에선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안 아프게 죽는 법'에 대해 검색했더니 그래도 살라는 응원의 메시지와 네 자리 숫자가 화면에 뜬다. 나는 정말 안 아프게 죽는 게 궁금한 거였는데. 1388은 아무래도 좋았다.
다소 쓸쓸했다. 누군가에게 말하고는 싶어서 글을 쓰긴 썼는데 응원이나 걱정이나 어떤 반응을 원한다기보단 굳이 따지자면 무관심. 삶이라는 게 생각했던 것만큼 조악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죽음을 더 단단하게 결심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다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