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yu Jul 11. 2023

그만 좀 닥치고 싶은 심정

 학교에는 의외로 다양한 호칭이 존재한다. 주사님, 주임님, 여사님, 조리원, 실무원, 조리사 등. 주사나 주임이 어떤 뜻인지도 모르고 다들 부르는 대로 따라 부르는데, 주사라고 하면 보통 퇴직 후 소일거리를 찾아 나선 분이다. 시설 관리나 경비를 서는 직책으로 통한다. 학교마다 다를 수 있지만 우리 학교에는 야간에 경비를 서는 야간 주사님이 두 분 계시고 격일로 근무하신다.

 그중 한 분은 아침마다 내가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시는 듯 주사실에 계시다 마중을 나오신다. 밤새 적적하셨는지 이런저런 얘기를 꺼내기도 하시는데 솔직히 내겐 고역이다. 나는 보통 한 시간 전에 출근하고 아침 일찍 출근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조용히 쉬는 시간을 갖지고 싶기 때문이라 누군가와 말을 섞을 생각이 추호도 없다. 더군다나 내게 직장은 직장인 편이라 사교적이고 싶지도 않은데 주사님은 나이가 적잖으셔서 쌀쌀맞게 대꾸하기도 힘들다.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간단히 맞장구만 좀 친 뒤 쌩하고 올라가지만 못내 마음이 불편하다.

 옆자리에 앉은 선생님도 그렇다. 유휴 교실이 부족해 한 교실을 세 명의 교사가 함께 사용하는데 다들 말을 거신다. 업무와 관계되거나 학생, 학교와 관련된 내용이면 상관없지만 그렇게들 내 여자친구 여부나 주말에 뭘 할 거고 뭘 했는지 등을 묻는다. 어디에 나온 당찬 MZ처럼 이어폰을 끼고

 '이어폰을 껴야 집중이 잘 돼서요.'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어쨌든 일 년을 같이 생활해야 하는 거 얼굴 붉히고 싶지는 않다.

 오늘로 벌써 서너 번은 된 거 같다. 똑같은 꿈을 꾸는 이유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 테고 나의 경우 억압된 욕구가 꿈으로 투사되는 거 같다. 장소는 어딘지 모를 방이지만 교육청이라는 느낌이 든다. 여러 명이 한 공간에 있는데 감시자 한 명이 자꾸 우리를 조용히 시킨다. 나는 왠지 신나 있고 옆에 있는 친구와 쉬지 않고 나불거리는데 우릴 감시하는 여자가 자꾸 내게 주의를 준다. 왜 모였는지 모르겠지만 나와 친구를 제외하고 분위기가 스산한 걸 보면 좋은 일은 아닌 듯하다. 그러니까 내 꿈속에서 정작 눈치가 없는 건 나였다.

 "선생님, 조용히 해 주세요."

 기분이 나쁘지만 따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사회적 통념이나 도덕률을 위반하는 것에 불편함을 느껴 나름 조조심스럽게 떠들었는데 그 여자는 집요하게 조용히 하라 닦달했다. 나는 조목조목 따져 들었다.

 "제가 왜 조용히 해야 하죠?"

 그녀는 제 나름의 이유를 들먹였고 우린 꽤 긴 시간 동안 실랑이를 벌였다. 기분이 확 나빠지는 바람에 한창 기세가 드높던 때 잠에서 깼고 무더운 여름날 별의별 개꿈을 다 꾼다고 생각했다. 물 한 잔 하고 침대에 다시 누웠을 때 은근한 쾌감에 젖은 나를 발견하곤 얼마나 스스로를 억압하며 살았는지 실감했다. 한마디 하고 싶은 사람들의 얼굴이 스쳤다.

 호젓한 귀갓길 옆을 달리던 검은 세단 차량, 그 속에서 찌그러진 맥주캔을 창 밖으로 던진 인간1. 불법주차한 회색 세단 차량, 갑자기 끼어들었던 주제에 클락션 소리를 냈더니 '깜빡이 켰잖아'하고 고함을 지르던 인간2. 길거리나 도로 위, 굳이 자동차 창문을 열어 담배빵 하는 인간3. 몇 년 전 운동회, 그저 칭찬 도장일 뿐인데 자기 아들 1등 도장 안 찍어줬다며 손찌검을 하던 학부모. 그 외에도 시답잖은 이유로 시비를 걸던 교장, 교감, 실장. 몇 페이지 펴라는 말을 수백 수천 번 하지만 정작 집중 안 한다고 꾸지람도 줄 수 없는 교실. 무엇보다 내게 닥치기를 강요했던 가족, 하나님, 나.

 이제는 그만 좀 닥치고 싶다. 참는 거 말고 인간n번처럼 생각하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고 싶다. 주사님과 옆자리 선생님에겐 '말 좀 걸지 마세요'하며 새침하게 얘기하고 싶고, 며칠 상간으로 만났던 인간1에서 3까진 삼각 조르기를 하며 '이 새끼야 일상 도덕 좀 지키자'하며 참교육하고 싶고, 교장 교감 실장에겐 '너나 똑바로 하세요'하는 일침을 놓고 싶고...

 얼마 전 넷플릭스에 'BEEF'라는 시리즈가 업로드 됐다. 화로 가득 찼던 주인공의 마음이 이제야 이해됐다. beef[verb]: to complain. 분노를 표출하는 걸 의아해한다는 미국 정서를 콕 짚어 비판하는 시리즈라고 하던데, 미국에 살고 있지도 않은 나는 자꾸 인간을 한 대 치고 싶고 욕하고 싶고 차라리 내가 죽어서 이 꼴 안 봤음 싶고. 끝내 총격전으로 끝나는 시리즈의 마지막이 그렇게 시원할 수 없었다.

 점점 꾹 참고 사는 사람이 없어진다고 느끼는 건 인터넷 댓글 때문일까. 그게 내 분통을 터뜨린다. 다들 자기 생각을 거침없이 내뱉고 표현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정답이 없는 것처럼 사는 사람을 향해 꼭 말해주고 싶다. 정답은 없을 수 있으나 합의는 언제나 있었고 정상인은 그것을 강요하지 않았을 뿐이다. 약속은 모두가 지켰을 때 의미가 있다. 몇몇 지키지 않는 사람들만 이득을 보는 행태가 이어지면 결국 혁명이 일어날 수밖에.

 하물며 사기업체에도 블랙 컨슈머가 있는데 공공기관에는 어째서 악성 민원인을 지정하지 않는지 장관이나 대통령이 직접 설명 좀 해주면 좋겠다. 공무원 청렴에 왜 '친절'이 들어가야 하는지, 세금을 공짜로 받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눈치를 보고 빌빌 기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자신에겐 관대하고 남에겐 야박한 n번 인간만큼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는 국가가 야속하다. 차라리 무인도에 표류라도 됐음 싶다. 그만 좀 싸우고 일 좀 하길.

매거진의 이전글 초등 3학년 공화국, 대한민국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