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yu Aug 23. 2023

공감의 반경

사회적 갈등과 문명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공감은 감정이입이 아니라 역지사지다.
-공감의 반경-


 미국에 여행 갔을 때 일이다. 잘 알지도 못하는 미국인 친구가 있었다. 그는 샌프란시스코 자기 집에서 묵어도 좋다며 흔쾌히 나를 초대했다. 아무리 돈을 벌 때라지만 미국 숙소값이 한두 푼이 아니라 염치 불고하고 그의 집에서 며칠을 머물렀다.

 "오늘 내 친구 생일인데 생일 파티를 한다네?"

 "오, 다녀와! 나는 집에 있을게!"

 "아냐, 내가 허락받았어. 같이 가자."

 우선, 나는 같이 가고 싶지 않았다. 하루 보고 말 사람의 생일 파티에서 그의 친구와 어울리는 건 내게 벌칙이다. 나는 넌지시 거절했고 그는 한사코 나를 설득했다. 내 상식으론 통 이해가 안 되는 시점이었다. 결국 나는 생일 파티에 갔고 그들의 환대가 처음엔 어색했지만 싫지 않았다.

 그 무렵 읽었던 '이상한 정상 가족'에서 말하길, 한국인에겐 내집단이 중요하다 했다. 친구 생일 파티에 제삼자를 초대한다는 건 대체로 어색한 일에 속한다. 나의 무리에 외부인이 자유롭게 출입하는 건 안 될 일이다.


 최근 관심 있는 주제가 '편향'이다. 어쩌면 그 편향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저자가 말한, 공감의 반경을 넓히는 것이지 않을까. 흔히 말하는 '내 사람'에게만 미치는 한국인의 '정'이 더 넓은 지평으로 펼쳐져야 한다. 인지적 공감인 역지사지를 활용해 '내 사람'의 반경을 넓히는 게 필요하다는 게 저자의 의견이고 나도 동의한다.

 우리는 '나'와 '너'의 숱한 대립으로 얼마나 많은 것들을 잃었던가. 대표적인 광주 5.18은 정치권에서 아직도 투닥거리는 화제다. '나는 절대적으로 맞고 너는 무조건 틀리다'는 편견도 결국 공감의 반경이 현저히 적기 때문이다. 상대를 인정하고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

 예쁜 눈 좀 달린 4족 보행 로봇을 넘어뜨리는 실험을 보며 불쌍하게 여긴 적이 있다면, 나와 교감하는 동물을 반려동물로 칭하며 애정을 가진 적이 있다면 희망이 있다. 알고리즘의 장난질에 놀아나는 요즘, 우리는 공감의 반경을 넓힐 수 있고 넓혀야 한다.


 첫 발을 내딛는 건 용기가 필요하다. 그걸 꾸준히 해 나가는 지구력이 변화를 만든다. 고대 중세 근대를 넘어 현대까지 오게 될 수 있었던 것도 변화 때문이었다.

 요즘 뉴스를 보면 한 자리만 맴돌고 있는 느낌이다. 아니, 후퇴하는 느낌까지 든다. 남의 도전에 손뼉 칠 줄만 알았지 정작 나는 Safe Zone에 갇혀 있지는 않은지. 한국 사회엔 정답이나 정도가 소거될 필요가 있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석연치 않은 결과물도 좀 참고 견뎌내야 하지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