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자연이 혁신에 대해서는 인색하지만 다양성에 대해서는 너그러운지를 명백히 알 수 있다.
-종의 기원-
고전 영화를 보면 전문가의 평이나 기대했던 것만큼 재밌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나는 스타워즈의 기발함이나 식스센스의 반전(영화 일자무식이다)이 그렇게 경탄스럽지는 않았다. 그러다 군대 때 한 선임이 말하길,
"그 영화가 나왔던 시대를 떠올려 봐. 얼마나 놀라웠겠어!"
휴대폰도 없던 시절에 펼쳐진 우주 전쟁이 어찌 재미가 없었으랴. 배경도 배경이지만 '내가 네 아버지다' 같은 명대사, 이제는 별 시답지 않은 반전이나 클리셰가 돼 버린 말은 신선함 그 자체였을 테지.
우리에게 당연한 과학적 발견들이 당시에 얼마나 과격한 주장이었을지 생각해 보면 다윈의 족적 또한 과히 혁명적이다. 영국 국교의 사상을 거스르는 자연 선택론은 코웃음이나 비웃음 사기에 딱 좋은 주장이었다. 다윈의 주장은 기독교가 말하는 창조와는 거리가 먼 얘기였고 인간의 격이 순식간에 떨어지게 만들었다. 전능자의 자녀에서 원숭이의 후손이 된 인간을 누가 반겼을까. 또, 그 저서의 두께 또한 공격적이긴 하다. 600쪽이 넘는데 모두가 읽을 수 있도록 쉽게 쓴 책이라니, 서울대를 졸업한 국어과 교수님의 강의가 생각났다.
스타워즈나 식스센스처럼 고등 교육 시간에 배웠던 자연 선택론을 '종의 기원'으로 다시 접한들 무슨 새로운 게 있을까 반문했던 나는 다윈의 깊고 넓은 학문적 들이에 감탄했다. 하나의 현상에서 꼬리를 무는 질문들과 다윈 나름의 해답. 타인의 관찰을 인용해 그 해답에 타당성을 불어넣은 다윈. 그 학문은 최재천 교수님 유튜브 채널 최재천의 아마존에서 만능이라 칭했다. 생명 분야에서 새롭게 발견한 모든 게 다윈의 저서에 있다는데 사실 나는 읽으면서도 큰 줄기 외에 세심한 부분은 이해하지 못했기에 최재천 교수님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가 보다 싶다.
생명이 그런 것처럼 인간의 문화도 종의 탄생과 멸절을 닮았던 거 같다. 기성세대가 강조하는 문화와 덕목이 있다면 새로운 세대는 다른 가치관을 추구하며 살았다. X세대. 호기롭고 싹수없기로 유명했던 이모 삼촌들의 명대사가 있다면,
"이러케 이브면 기부니 조크든요."
그 사이에 껴버린 세대는 그 존재 자체가 희미했고 기성세대에겐 부려먹기 좋은 부하로, 새로운 새대에겐 답답하지만 좀 만만한 상사로 기억됐다. 그러다 세월이 흘러 기존의 기성세대는 명을 달리하고 X 세대가 주 소비층이 되며 주류 문화로 자리 잡았다. 끼인 세대는 자연스럽게 X 세대와 같은 취급을 받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 구분이 확실했다. 그만큼 갈등도 단순했다.
어느 날부터 90년대생이 온다며 호들갑 떨던 사람들은 MZ 앞에 맥을 못 추리고 온갖 진상들의 출현으로 머리가 어질하다. 생태계 교란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나는 응답하라 2002는 말이 돼도 2020이나 2023 등의 시리즈가 나오는 데에는 회의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사람들이 하는 건 과거 회상, 챌린지 외에는 혐오, 양극화가 전부이기 때문이다. 자연은 다양성에 너그럽다는데 그 다양성을 해치기 바쁜 인간 문화는 자연스럽지 못하다.
책을 덮으며 중학생 1학년 때 제거했던 내 맹장이 떠올랐다. 인간에게 쓸모없는 기관이라는데 맹장이 없는 인류가 탄생할 수 있을까? 맹장이 없는 인류라면 현존하는 인간과는 다른 종인 걸까? 아무튼 맹장이 있는 사람들이 멸절하게 되는 환경이 만들어져 맹장이 있는 인간끼리 교배해야 할 텐데 의술의 발달로 그런 일은 없을 것 같다.
혹은 성선택으로, 여성이 말하길
"난 맹장이 선천적으로 없는 남성에게 끌려요."
가 돼야 하는 건데 그런 일 또한 없겠지. 맹장처럼 양극화나 혐오가 사라지는 일도 허무맹랑한 상상에 그치고 말까? 교실이 붕괴되는 현실 속 교사지만 여전히 35명 남짓의 보호자는 멀쩡하다고 믿기에 희망을 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