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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yu Oct 03. 2023

사랑에 항복하다

인생을 살면서 사랑하는 것과 사랑받는 것을 배우는 것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사랑에 항복하다-


 사랑을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은 자기 긍정에서 나온다. 나는 스스로가 사랑받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느낀다. 그래서 속도가 다른 사랑이나 하나님의 사랑은 거부감이 든다. 받아본 적 없는 형태이기 때문이 아니다. 나의 최선이 상대를 만족시키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 그 사실을 상대가 깨닫게 된다면 되려 버려질까 두려웠다. 한 꺼풀만 더 젖혀보자. 내가 전심으로 상대방을 사랑했을 때 자제력을 잃은 내 모습을 보고 상대가 질려 도망칠까 두렵다. 그러나 사랑은 쥐는 게 아니라 놓음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내가 먼저 해야 하는 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다. 조바심이 나고 포기하고 싶고 이 길이 아닌 거 같다는 느낌을 받은 건 교회가 주장하는 '사탄'의 유혹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저 내 문제였을 뿐이다. 몇십 년을 살아오며 제때 성과를 내지 못하면 혼나고 경쟁에 이기지 못하면 도태된다는 세상의 논리에 익숙해진 나는 그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순종과 의탁의 차이. 두려움이나, 자기만족을 위한 순종을 원하신 적 없으신 하나님.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에게 내 모든 걸 맡긴다면 뒤따라올 순종. 그러니까 어렸을 때 스카우트에서 한번 해본 적 있는 눈 감고 뒤로 넘어지기 같은 게 아닐까. 주변을 둘러싼 친구들을 얼마나 신뢰하는지, 자신의 온 무게로 추락하는 친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깨닫게 해주는 일종의 사회 실험이었다. 만약 내가 단 한 번이라도 성공한 적이 있었다면 하나님에게 내 모든 걸 의탁하는 게 이리 어렵진 않았을까.


 어렸을 때 나는 사람을 사랑했다. 부모님을 신뢰했고 친척을 기다렸고 친구와 함께하는 걸 즐겼다. 그러나 그들의 비의도적인 언행으로 상처 입은 나는 점점 그들로부터 멀어져 갔다. 내 반응이 자발적인 멀어짐이 아니라 표현이었다면 어땠을까.

 "공부 끝나고 내 하고 싶은 거 좀 할 수도 있지! 잘한 거는 칭찬도 안 해주고 못한 거만 지적하니까 속상해!"

 "나 소심한 거 알잖아. 먼저 다가와 주지 않으면 먼저 말 걸기 불편해. 그래서 먼저 다가오기 전에 내 표정이 이상한 건 싫어서가 아니라 용기가 없어서야."

 "네가 내 말 때문에 상처 입었다니 너무 미안하다. 그런데 네가 한 말도 내겐 너무 상처야."

 정말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말. 언제나 마음속으로는 하고 싶었던 말. 그러나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며 정상이라고 생각하지 못해서 숨기기 바빴던 말.

 "나는 너를 이렇게 사랑하는데 너는 왜 나를 그것만큼 사랑하지 못해?"

 그때부터였을까. 사랑에 크기가 있다고 느낀 .  크기를 결정하는  내가 가진 조건이라는 진실의 미숙한 일부를 믿게  . 부모님에게 드리는  아깝기보단 뿌듯했는데 부모님이 내게 주실 때도 그랬겠지. 친구들에게 선물할   마음이 그렇지 않았는데 친구들이라고 그랬을까. 하나님이라고  마음과 다를까. 머리로는 아는데 마음이 따라주지 않는다.

 도서에서 사랑에 의탁한다는 건 물속에서 힘을 빼고 물에 뜨는 거라고 했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내가 잘 뜨고 있는지 자꾸 확인하려고 고개를 들면 들수록 나는 힘이 빠지고 가라앉게 된단다. 수영 강사가 얘기하길 배영 할 때 가장 중요한 게 배를 띄우는 거라고도 했다. 배가 목보다 위에 있으면 오히려 숨을 못 쉬게 될 거 같지만 그 반대다. 뜨지 못하면 헤엄은 고사하고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게 물이 자꾸만 코로 들어온다.

 나는 내 좋은 모습만 보이려고 했다. 하나님에게도 사람에게도. 의탁한다는 건 물 위에서 내 못생긴 배를 배짱 있게 내미는 것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나 이런 사람이야. 그래도 사랑하려면 사랑해 봐!' 같이 도전하는 게 사랑이지 않을까. 앞으로 내가 취해야 할 삶의 방식도 그렇게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그전에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 하나님은 이미 내 모든 약점을 알고 계심에도 나를 사랑하기로 결심하셨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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