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별을 보는 순간 깨달았다. 이 세상은 과거만을 볼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는 것을.
-나는 괴산의 시골버스 기사입니다-
소설이나 드라마, 가상의 세계에서 실존하지 않는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며 하나의 세계를 소비하다 보면 인간관계라든지 위기 대처 방법 그리고 더 거창하게는 (디지털)리터러시까지 기를 수 있다. 결코 영상이나 이미지를 과소평가하지 않지만 최근 경향이 활자를 경시하는 풍조라 그 반발심으로 학생들에게 책을 강조하고는 있다.
난 그중에서 산문을 가장 좋아한다. 그러나 좋은 산문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어렸을 땐 어설픈 위로나 공감에 눈물을 글썽였던 적도 제법 많았지만 그런 책은 오래 남지 않았다. 난 목적이 분명한 산물을 읽을 땐 남사스러워 입꼬리가 아래로 축 처지는 편이다. 그래서 박완서 씨의 작품을 좋아한다. 의미를 부여하거나 메시지를 담으려 하지 않아서 좋았다. 자신이 느낀 바나 생각을 담백하게 서술하고 그걸 따라가다 보면 그녀에게 동화돼 그녀의 삶을 느낄 수 있었다.
작가의 나이를 생각했을 때 그 감정이 다소 입체적이고 활력 있는 모습이라 처음에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인가 싶었다. 작가의 문체가 익숙해질 때쯤 버스에 탑승한 숱한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엮은 챕터가 등장한다. 차분하게 얘기를 풀어나가는 게 내가 기대하는 60세의 문체라 더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소설은 가상이나 산문은 실제다. 때로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게 현실이나 내가 좋아하는 산문은 맑은 콩나물국 같은 일상이다. 관심을 사로잡기 위해 너도나도 자극적인 내용을 다루는 콘텐츠가 범람하다 보니 입가심은 좀 담백했으면 싶다. 그런 의미에서 시골버스 기사님의 하루를 엿보던 며칠간은 가볍고 편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