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yu Oct 27. 2024

호밀밭의 파수꾼

그럴 땐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호밀밭의 파수꾼-


 고등학생 때의 기억이다.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고 잡생각이 많이 날 때 나를 구원해 준 사람은 2학년 담임 선생님이었다. 구원은 다소 거창할 수 있으니 도움이라고 해두자. 선생님은 내가 일주일 동안 야간 자율학습을 감히, 자율적으로 빠질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다. 나는 당시 지하철도 닿지 않은 다대포 해수욕장의 음악 분수대 공연을 감상하고 싶었다. 그 길로 떠난 사뭇 진지한 여행의 결과는 그 마음만큼이나 별 감흥 없이 끝났다. 늦장을 부린 탓인지 다대포에 도착했을 땐 공연이 이미 끝나 있었는데 전혀 아쉽지 않았다. 다만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내가 왜 여기까지 와야 왔는지 궁금해했다. 지금에서야 하는 얘기지만 만약 그때 닥치고 공부나 열심히 했다면 지금은 좀 나은 인생을 살고 있지 않았을까. 원망 아닌 원망을 한 번 해본다.

 방황의 모습은 제각각이다. 소란스러운 사춘기 시절을 보낸 사람, 주변을 살얼음판처럼 만들고 마는 사람, 조용히 지나간 사람 등. 안타깝기로는 조용히 방황한 사람들이 제일이다. 그 열기와 방향성 없는 분노를 어딘가에 쏟아내지 않으면 흘러내리거나 터지거나 하기 마련인데 조용히 지나갔다 함은 표출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는 말이다. 신뢰하고 기댈 사람이, 친구조차도 가까이 두지 못하고.


 감히 예상하자면 홀든 콜필드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을 것이다. 콜필드는 나처럼 그 여파를 아직도 감내해야 하는, 여전히 터지고 흐르고 마는 그런 감수성으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훌쩍 떠나버리는 방식을 택하곤 안전하게 미치는 것을 선호한다. 내가 아는 사람이라곤 없는 곳에서 안락하게 미치는 것이 쓸쓸하고 외로운 방식이라는 점에서 더욱 마음에 든다.


 대입 자기소개서에 썼던 말이 콜필드의 꿈과 이하동문이다. 힘들어하는 학생에게 힘이 되어 주고 싶다는, 나의 결핍을 누군가는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희망에서 출발했다. 막상 추락 방지 관리자가 되고 나니 여간 힘들지 않아서 잘못 선택했나 싶기도 하다. 요즘에는 추락하려는 아이를 막을 힘은 내게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아마 추락하는, 자의적으로 튕겨나가기로 마음먹은 사람의 인생을 잡겠다는 건 내 자만이 아니었을까. 욕심이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그래서 좀 내려놓기로 했다. 우선은 아이들이 추락하는 걸 지켜볼 셈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숙론/과학이 가르쳐준 것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