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 정책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줄 정부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힐빌리의 노래-
초등학교는 가에서 라로 구분한다. 접근 용이성, 학급 수, 업무 편의성 등 다양한 요소를 평가해 등급을 매긴다. 교사가 학교를 이동할 때 사용하는 지표이기에 기준은 교사다. 대체로 차 혹은 대중교통으로 접근하기 편한 학교, 학급 수가 많아(학생이 많아) 업무가 적은 학교를 선호한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살기 좋은 곳에 사람이 몰리고 사람이 몰리는 곳에 교사도 몰린다. 그런 학교는 자연스레 학력도 높다.
개인적인 선호도를 얘기하자면 난 '라' 학교가 좋다. 학급 수가 작으니 교사 수도 작아 업무는 많다. 교사들이 '라'를 기피하는 대표적인 이유다. 그러나 나는 업무 강도보다 학생과 학부모 상태가 더 중요하다. 편견일 수 있지만 '라'로 내려갈수록 학부모가 맞벌이라 민원이 적다. 외벌이 하는 가정은 집안일을 담당하는 보호자 쪽에서 별의별 항의를 해댄다. 기막힌 민원일지라도 '아동 학대 고소' 당하지 않으려면 수용해야 하는데 그런 모습을 보며 학생은 '아, 학교 별거 없네'하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반면에 '라' 급지 학생은 공부는 좀 못해도 순수하고 예의 바르다(쓰고 보니 급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역시 콩콩팥팥인가 보다).
'힐빌리의 노래'는 회고록이다. 미국 내 '라'에 해당할 혹은 '하'에 해당하는 학교에 다니며 갖은 수모를 겪지만 결국 성공한 저자가 보내는 응원 메시지다. 1부 2부로 나뉘는데 1부 내용이 하도 참담해 더 흡입력이 있었다. 2부 끝으로 가면서 저자가 보수적 정치 견해를 가지게 된 경위를 소개하는데 미국 정치와 소외 계층 현황, 트럼프가 득세하는 이유도 알 만했다.
영국에서 살 때 영국 친구와 정치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각 나라 정치가 얼마나 엉망인지 얘기했는데 미국도 그러하거니와 현재 한국 계엄 상황을 지켜보면 정치 잘하는 나라는 없나 싶었다. 계엄 발령이 나고 6시간 만에 끝나고 탄핵을 외치는 현 상황에서 소명에 관해 생각해 본다. 정치인은 아주 오래전부터 자기 배 불리기 바쁘다는 이미지를 견고히 세워왔다. 현재도 다를 바가 없다. 과연 그들에게 소명이라는 게 존재하긴 했을까. 몇 해 전부터 싸움을 위한 싸움,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으며 대한민국을 고이게 만드는 대표적인 사람들이 아니었던가.
대의 민주주의도 한계에 다다른 듯하다. 국민 목소리를 효과적으로 전달해야 할 사람들이 당 이득을 위해서만 행동하니 나라 꼴이 이럴 수밖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문가를 모시고 국민과 함께 고심해야 할 꿈같은 정치는 언제 볼 수 있을까. 요즘은 차라리 세종대왕이 환생해 나라를 다스려 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