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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yu Jun 17. 2022

신화의 미술관

 미술 서적을 읽을 때마다 후회되는 게 하나 있다. 파리, 로마, 런던, 암스테르담, 바르셀로나, 마드리드 외 내가 방문했던 모든 대도시에 큰 미술관이 있었는데 몇 곳을 제외하고 방문하지 않았다. 그저 고상한 취미일 뿐이라고 치부했는데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실감하며 감상 활동에 소홀했던 게 못내 아쉽다. 돈이 아까울 정도다. 유럽에 갔으면 유럽에서 즐길 수 있는 것들을 체험했어야 했는데 뒤늦게 그 가치를 깨달은 내 잘못이 크다. 특히 런던에 거주할 땐 뮤지컬을 안 본 게 또 땅을 칠 일이다. 한국 나이 23살. 문화에 열광하기엔 나는 나를 너무 사랑했다.


 내가 유럽에서 처음 방문한 미술관은 루브르였다. 작품은 방대한데 이해할 수 있는 역사적, 신화적, 종교적 지식이 부족했던 터라 다리만 아플 뿐 감흥은 없었다. 내 딴은 시간을 헛되게 소비하지 않겠다며 루브르 전시 작품이나 관련 도서들을 찾아봤는데 지루하다는 편견 때문에 한두 번 펼친 뒤 반납했던 거 같다. 변명을 하자면 지금처럼 가독성 좋고 잘 정리해 둔 도서가 없었던 거 같기도 하다.


 한국에 오고 나서 잡식성 독서 습관을 기르기 전까지도 미술 까막눈이었지만 '우리 각자의 미술관'을 접하고 취향의 폭을 넓히기 시작했다. 이어 읽었던 책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역사화와 역사를 설명한 것이었다. 거기서 말하길 사진기가 발명되기 이전엔 미술 작품 중 가장 가치 있는 게 신화화, 역사화, 종교화라고 했다. 모든 작품을 섭렵할 순 없지만 [신화의 미술관]을 한 장씩 넘기며 신화화를 공부하는 것도 흥미로웠다.


 수선화가 된 나르시스 얘기가 기억에 남는 건 나에게 집중하느라 주변을 살피지 못한 나와 닮았기 때문이다(절대 외모가 아니다). '오디세이아'나 '일리아스', 그리스/로마 신화를 읽어 봤다면 대부분 아는 얘기일 테지만 그림을 보며 신화를 듣는 건 색다른 매력이 있었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여러 상징물, 작가의 해석에 따라 달라지는 구도나 형태를 비교하는 것도 신기했다.


 런던에서 돌아오며 '유럽도 다 비슷하구나'하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23살의 짧은 식견이었다. 사진으로 간단히 접하는 유럽의 소도시나 교외는 대도시나 관광지와 비교할 수 없는 아취를 풍기고 있었다. 헛으로 다녀온 거다. 많이 아쉽지만, 큰 부호는 아니지만 기회가 생긴다면 꼭 다시 가보고 싶다. 그때는 미술 작품을 보는 견해도 나름 발전해 있겠지. 아깝지 않은 여행을 다녀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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