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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yu Jun 22. 2022

먹다 듣다 걷다

교회는 지금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자기와 다른, 모르는 곳을 걸어간 사람들 때문에 복음이 확장된 것입니다.
-먹다 듣다 걷다, 이어령-


 인문학자의 눈에는 성경이 이렇게 읽히기도 하겠거니와 그 해석이 참 새뜻해 편 자리에서 거의 다 읽었다. 종이가 두껍고 책이 작아 술술 넘어간 것도 있었지만 산수화 한 폭을 보는 듯 여유로운 문장 덕분이기도 했다. 여백. 그것은 동양 미술의 화룡정점이며 많은 것을 말하기도 했다. 두고두고 읽어볼 책이며 신자가 아니더라도 무리 없이 읽힐 만하다.


 교회가 강조했던 것들이 '사랑, 구제, 구원'처럼 명사였다면 그는 '먹다 듣다 걷다' 같은 동사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 교회의 구제 사업이 어때야 하는지, 섬기는 것보다 무엇이 선행돼야 하며, 길 위에서 마주해야 할 진리는 무엇인지 화두를 던져 여백을 채웠다. 절대 비지 않은, 그래서 읽기는 쉽지만 내려놓기는 어려운 책이었다.


 책의 마지막 챕터가 '걷다' 였는데 가장 최근 여유롭게 산책했던 때가 언제였나 되짚어봤다. 2주 전, 자연에 이렇게 많은 소리가 있었냐며 감탄하곤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까지 걸었었다. 대문 밖만 벗어나도 아무도 없는 칠흑인 시골은 늦은 밤 시온산으로 향하는 예수님의 발걸음을 떠올리게 했다. 지평선 근처에서 희미하게 비치는 가정집 불빛만이 밤공기와 다정하게 얘기하고 있었다. 그곳을 채우는 건 개구리울음 소리, 풀벌레 소리, 나긋나긋 들려오는 바람소리, 달빛이 쏟아지는 소리, 우물이 고이는 소리, 그리고 그 모든 소리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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