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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yu Jul 31. 2022

날아라 미스터 타이거

'나는 교사다' 서포터즈 1기, 위즈덤하우스

릴리가 널 좋아하게 하려고 너 자신을 바꿀 수는 없어. 넌 링 위에서 날아올라야 해!
-날아라 미스터 타이거-


 MBTI와 관련해 가장 공감했던 말이 있다. 16개 중 하나의 유형이 유구한 나의 역사를 담지 못한다. 검사를 하면 INFJ라는 결과가 매번 나오지만 결과보다 중요한 건 왜 INFJ가 되었나이다. MBTI결과가 나에게 알려준 건 16개 가면 중에 내가 가장 편안하게 느끼는 게 INFJ가면이라는 점뿐. 진짜 나를 알기 위해선 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사람이 16가지 유형으로 나뉠 수는 있으나 똑같은 이유로 같은 유형에 속하는 건 아닐 테니.


 검사 중에 매번 떠오르는 질문 또한 검사 결과를 신뢰하지 않는 이유다. 나의 어떤 모습을 생각하며 검사에 참여해야 하는지, 예를 들어 직장에서의 나인지, 가장 친한 친구들과 있을 때인지, 가족과 있을 때인지. 혹은 주어진 상황 속에서 내가 생각하고 판단한 대로 움직이는지 확신이 없다는 것도 큰 문제다. 살다 보면 내 마음이 내 마음이 아닐 때가 많다. 마음이 하는 일이라는 게 언제부터 예상이 가능했던가. 여태껏 쌓아 온 나의 데이터대로 내가 움직일 거라는 확신도 없다. 결국 MBTI는 주어진 상황에서 상대가 어떻게 행동할지 예상할 수 있는 척도, 즉 상대를 형용해주는 정도이지 그 자체는 아니다.


 미스터 타이거가 길을 잃게 된 건 릴리 때문은 아니고 잘 보이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었다. 미스터 타이거는 릴리를 몰랐다. 멀찌감치 콩깍지 낀 눈으로 릴리를 관찰하며 릴리는 이럴 거라는 자신만의 환상 속에서 릴리와 관계하고 있었다. 점원인 걸 보면 외향적일 거야, 손님에게 부담 없이 다가가는 모습이 감정형 인간인 거 같네. 그렇게 만들어진 릴리는 그 취향까지 미스터 타이거에 의해 정해졌다. 레슬링을 안 좋아할 거야.


 미스터 타이거가 릴리를 만나 진짜 관계가 시작된 순간은 다른 게 아니라 가장 본인 다운, 삐삐와 산책하던 순간이었다. 결국 형용사는 중요한 순간에 힘을 잃는다. 가장 진실된 내가 아니고서야. 진실이 통하지 않을 리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간절함이 잔뜩 묻은 눈빛이나 몸짓을 거절할 수는 있으나 그런 사람을 맞닥뜨린 순간 마음에 일렁이는 것 때문이라도 덩달아 진지해진다. 그래서 형용사만 잔뜩 붙은 사람은 처음이든 마지막에든 매력이 없다.


 MBTI는 좋은 스몰 토크가 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어떤 유형인지 묻는 게 오래가는 대화의 물꼬를 트는 쉬운 방법이다. 제발 거기까지만. 중도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건지 작은 행동에도 '어, 역시 J' 같은 반응이면 피곤하다.


 노자, 장자 사상에 근간을  명상가의 책에서 공감했던  있다면 자신을 제한하지 말라는 것이다. 나는 이래, 나는 저래. 이렇게 생각하고 선택하게 된다면 스스로가 만든 감옥에 갇히는 것이다. 우리 안에는 16가지보다  다양한 모습이 있다.  빛깔을 정해놓고 다른 빛을 죽이는  스스로에게도 너무 실례되는 일이다. 가능성을 열어두자. MBTI  거기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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