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에서 광화문으로 넘어가는 길목에는 특이한 이름의 음식점이 있다.
음식점 이름이 '존재의 이유'이다.
처음에는 간판 때문에 눈이 갔고, 그런 이름의 가게가 다름 아닌 가정식 백반과 고기를 파는 곳이어서 피식 웃음이 났다.
존재의 이유. 아마 음식이 그만큼 중요하다, 먹으러 와라 뭐 그런 이야기겠지 싶다.
근데 그곳을 지나쳐가는 버스 안에서 또 머릿속 한편으로는 이런 고민에 빠져보는 것이다.
'나의 존재 이유는 뭘까?'
언젠가는 이런 생각을 하지조차 않고 살아갔던 것 같다. 존재의 이유가 필요 없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그런 말 자체를 떠올려본 적이 없다. 그냥 기계적으로 매일을 살았다. 누군가 시키는 일을 했고, 다들 하곤 하는 일을 했다. 자존심이 상하지 않을 정도로, 눈에 띄게 뒤쳐지지 않을 정도로 했다. 그렇게 흘려보낸 시간은 그저 허공으로 흩어졌지만, 내겐 굳이 그 패턴을 바꿀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그저 태어났기 때문에 사는 삶이 얼마나 예측가능하며, 그렇기에 얼마나 불행한가.
브랜드를 공부하면서부터는, 적어도 그렇게 살아가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을 한다.
많은 사람들이, 특히 자기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그런 이야기를 한다.
'전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고 싶어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또 많은 브랜드들은 홈페이지에 이런 이야기를 써놓는다.
'환경오염을 없애는 것. 그것이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유행 없는 디자인과 뛰어난 성능으로 여러분의 일상에 행복을 가져옵니다.'
하지만 과연 그러한가.
그 모든 이야기들이 잘못되었다거나 틀린 이야기라는 게 아니라, 과연 그 말을 뱉기까지 얼마나 오래, 얼마나 깊이 고민하고 행동해왔냐는 것이다. 그것이 과연 그들의 '진정한' 존재이유가 될 수 있냐는 것이다.
정답은 없지만 오답은 있다. 지속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환경보호를 외치던 이들이 이내 공장 폐기물을 바다에 유출시키다가 적발되는 것이고, 있는 텀블러를 계속 새로 사게 유도하여 오히려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럼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를 고민해보면, 이유는 단순하다.
자신이 뱉은 말에 대한, 자신이 우선 내세워두었던 존재의 이유에 대한 진심이 없거나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보기 좋은 겉치레였거나, 다른 데에 목적을 둔 존재이유였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존재이유에 깊이가 없고, 시도때도 없이 바뀐다. 눈 앞에 위기가 다가오면, 혹은 더 좋아 보이는 것이 나타나면 입장을 바꾸곤 한다. 말과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브랜드는, 퍼스널 브랜드와 기업 브랜드를 가리지 않고 무너진다.
반면 많은 사람들의 무한한 사랑을 받는 브랜드들은 어떨까.
그들의 행보는 분명 다르다. 그들에겐 자신이 이야기하는 것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있다.
그 누구도 그 끝에 성공이 있다고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때로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 큰 것을 포기해야 하기도 한다. 때로는 사람들이 그들을 떠나거나, 다양한 이유에서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그럼에도 놓지 않을만큼, 그들에겐 강력한 믿음이 있었을 것이다.
작년 즈음이었나. 금광을 발견하고자 하는 탐광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골드> 라는 영화를 봤다. 거기서 누군가 주인공에게 '탐광자란 무엇일까요?'라고 묻자 주인공이 한 말이 있다.
거기에 있다는 믿음. 탐광자에겐 그 믿음이 있다.
검사지가 아니라고 말하고 사람들이 떠나도, '바로 그곳이다' 라는 마음 속 목소리를 따르는 것.
- 영화 <골드> 중에서
존재이유를 찾고 굳건히해가는 과정 또한 그것이 아닐까.
굳건한 믿음에는 흔들림이 없고, 주저함이 없다. '믿음'이라는 말이 가지는 절대적인 힘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나의 존재이유는 무엇인가?
예전과 달리 이런 고민을 시작한 지금은? 과연 나는 나의 존재의 이유를 찾았나?
아니, 여전히 흐릿하다.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 나의 쓰임, 나의 신념을 찾는 일. 존재의 이유를 명확히 해가는 일은 꽤나 어렵다. 그건 정답도 보기도 없는 주관식 문제와 같은 것이다. 철학적 사유의 연속이며, 그렇게 생각한 바를 꾸준히 행동해내는 의지까지도 필요로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멈추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그 고민의 시간들 끝에 분명 점점 선명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엉뚱한 곳에 빠질 수도, 혹은 정말 나와 딱 맞는 옷을 입은 듯한 느낌이 들 수도 있다. 무엇이든 가장 중요한건, 살아가는 시간을 그런 고민과 행동에 투자하는 것이다. 흘러가는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생각과 행동을 컨트롤하는 것이다. 나를 믿고, 그런 나의 생각을 믿는 것이다.
그렇게 탐광자들은 금을 찾았고, 브랜드는 영속하는 강력한 뿌리를 내렸다.
당신의 존재이유는 무엇인가. 아니, 당신은 이에 대해 꾸준히 고민하며 삶을 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