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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규 Mar 05. 2022

바다를 좋아하는 이유

최선을 다해 일렁이는 것들의 아름다움

'짜장면이 좋아, 짬뽕이 좋아?'

'음, 비슷한데.. 그래도 짜장면..?'


'부먹? 찍먹?'

'부먹이라고 하면 욕먹던데, 난 사실 둘다 별로 상관없어.'


취향이라곤 잘 없었다. 한참 인기가요, 음악중심이 성행하던 가운데 나는 동방신기, 빅뱅, 엑소에 그닥 빠져들지 않은 채 성인이 되었다. 또래들과 옛날 이야기를 할 때마다 공감이 안 돼서 멋쩍었던 게 한두번이 아니다.



'그럼 바다가 좋아, 산이 좋아?'

'난 바다.'


그런 내가 분명하게 좋아하는, 자주 생각나는 하나가 있다면, 그건 바로 바다.


수영도 못하면서 나는 늘 바다를 좋아했다. 언제부터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기쁜 일이 있을 때도, 힘이 들 때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바다였다. 한없이 바라보고 있는게 전부이면서도, 그 시간이 너무 좋았다.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모두 묻곤 한다. 바다가 왜 그렇게 좋냐고.

그 질문에 대답하는 게 생각보다 어렵더라. 왜냐고? 그냥 보고 있으면 좋은데.. 글쎄, 왜일까.



바다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파도가 정말 쉴새없이 움직인다.

모든 파도가 엇비슷한 것처럼 보이면서도 늘 새롭다. 어떤 파도는 조금 더 멀리 와서 부서지고, 또 어떤 파도는 부서지지 않은 채 울컥거리며 한참을 다가온다. 높게도, 낮게도 다가온다.

그리고는 끝내, 푸르르던 모든 파도는 하얗게 부서진다.


마지막에 와서는 그렇게 산산조각 부서질 걸 알면서도, 파도는 항상 최선을 다해 움직였다.

어쩌면 정작 본인은 힘이 부쳤는지도 모르겠다. 바람이 부는 방향에 따라 이리저리 휩쓸릴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라며 때로는 스스로를 갉아먹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멈추는 법은 없었다. 이리로 저리로, 때로는 부서질 수 밖에 없는 해안가로, 때로는 더 깊고 넓은 수평선 너머 어딘가로. 파도는 움직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좋았던 것 같다.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그 모습이 나약하기는커녕 너무 평온해 보여서, 그 평온함이 마침내 멀찍이 서서 그를 바라보던 나에게까지 와 닿았다.


그리고 그렇게 최선을 다했기 때문일까. 움직이는 바다의 물결에 햇빛이나 달빛이 닿으면 그게 그렇게 반짝이고 아름다울 수가 없다. 그걸 가리켜 '윤슬'이라는 예쁜 말이 생겼다.



움직이지 않는 채로 매끈한 거울에 빛이 비치면 눈이 부시다. 그러다 자연히 눈살이 찌푸려진다.

일렁이는 파도는 다르다. 일렁임 속 수많은 작은 면들에 반사되어 생기는 각각의 빛은 윤슬이라는 예쁜 이름을 가지고 있다. 아무리 보고 있어도 눈 찌푸릴 일 없이 아름답기만 하다.


나는 바다를, 파도를 사랑한다.

그렇게 나는 바다의 성실함을, 그 성실함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을 사랑한다.



최선을 다해 노력한 만큼의 결과를 얻는 것보다는, 노력을 최소화하는 게 더 멋있고 성공한 것처럼 우러러보아지는 요즘이다. 단타로 주식 투자에 성공한 사람들의 신화가 떠돌고, 뭐든 빨리, 단번에 해치우는 게 최고인 것처럼 받들어지는 요즘이다.


그 가운데 나의 생각은 점점 힘을 잃어갔다. 어디서 어떤 일을 하든, 적어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나의 생각은, 그저 듣기 좋은 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의 말처럼 느껴졌다. 내가 오답인 것처럼.


요령 피우지 않으려고, 뒤쳐지지 않으려고 아등바등 살아오던 나의 삶은 그렇게 흔들리고 무너지기도 했다. 최선을 다해 살아야한다는 말을 스스로 증명하고 싶었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실패했고 늦어졌다. 계획과 달라졌고 마음이 굳건하지 못했다.


나 스스로조차 나의 말들을 증명하지 못할 때의 그 허무함. 점점 그 감정이 나라는 사람을 덮치려 했다. 그때마다 나의 마음을 다시금 평온하게 만들어준 게 바다였고 파도였다.


얕은 파도는 부서지지만, 깊은 바다는 그저 묵직하게 일렁인다.


그걸 보면서 나는 다시금 마음을 다잡는다.

'깊은 바다같은 사람이 되어야지,' 생각한다.

'때로는 바람이 불어 휩쓸리면서도 절대 멈추지 않아야지, 그렇게 부지런히 움직이다가 마침내 빛이 비쳤을 때 반짝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스스로를 위로하고 응원한다.


그렇게 바다는 내 마음의 안식처가 되었다.


최선을 다해 일렁이는 모든 것들을 사랑해야겠다.

그게 내가 되었든, 바다가 되었든,

그 무엇이 되었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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