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가을
가을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한 지도 꽤 시간이 흘렀다. 이제 점점 겨울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스치듯 들었던 가사. "오 나의 가을이여". 김그림 씨의 "가을이 분다"의 가사였다.
가을이 불어왔다. 계절이 바뀌는 틈바구니에서 조용히 색을 입는 나무의 행렬을 본다. 가을은 하늘이 높아지는 계절이다. 그만큼 그리움이 사무치는 계절이기도 하다.
그것이 가을이다. 바람처럼 잠시 머물다 떠나는 계절이며, 그 끝을 잡을 새도 없이 멀리 떠나버리기 때문에 더욱 아련한 것.
가을이 환기하는 기억의 별무리는 우리의 가슴을 먹먹하게 덧칠하며 깊은 마음을 품게 한다. 나는 그것이 가을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가을엔 책을 읽는다. 가을의 그리움이 커지는 만큼 청승을 떨기에도 좋은 계절이 되었다. 가을에 사무치는 외로움이 있기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때문에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 말하는 게 아닐까 싶다. 사람의 외로움이 깊어질수록 사람의 글을 찾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지기 때문이 아닐까.
따라서 가을은 시인의 계절이 되는 게 아닐까 싶다. 고독한 시인들의 언어에는 겨울이 더욱 적법할 듯싶지만, 시인의 글이 문득 그리워지는 계절은 가을이기 때문이다.
가을은 외롭지만 작가와 독자의 소통이 가장 활성화되는 계절이기도 하다.
가을에 익어가는 생명은 이윽고 찾아올 겨울의 침묵을 향해 달려간다. 가을에 가장 아름다운 옷을 입고서 그 마지막을 찬란히 불태우는 것이다.
가을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러한 마지막을 내포한 시간이라 그런 게 아닐까.
가을은 죽어감의 계절이 아니라 삶이 각자를 증명하는 풍요의 계절이 아닐까 싶다.
가을의 풍성함은 각 생명을 살찌운다. 그리고 찾아올 긴 잠을 대비하도록 한다. 가을 속을 거니는 마음은 어떨까? 찾아올 긴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 그 영혼을 살찌운다.
때문에 가을엔 많은 글을 찾아서 읽고 책을 읽기에 정말 좋은 계절이 되는 듯하다.
가을은 참 알아가기 어려운 계절이다. 봄처럼 짧고 여름처럼 찬란하며, 겨울을 닮아 외롭고 고결하다. 가을엔 참으로 피어나며 열매 맺는 것이 많고 가을을 맞아떨어지는 잎새가 한가득이기 때문에 가을은 뭐라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계절이다.
나는 그런 가을만의 생명이 좋다. 가을이 보여주고자 하는 바는 생명의 풍요로움이 아닌 그 속에 숨은 생의 다채로움이 아닐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대는 가을을 보내며 어떤 계절을 살고 있을까?
살랑이는 억새풀, 떠나가는 찬바람들. 가을이 품은 찬란함은 온 피부로 느끼며 이 추위를 맞이하고 있을까.
그대가 지나는 가을이란 계절은 과연 어떨지 궁금하다. 이것이 가을이 주는 질문이 아닐까 싶다.
그것이야말로 가을이 바라는 소통이며, 가을이 맺어주는 인연의 끈이 아닐까.
그대의 가을을 말하고 떠나갔으면 좋겠다. 잠시 이 글에 머무른 철새처럼 자신의 길을 다시 떠나야겠지만, 나는 그대의 가을이 아름답기를 바란다.
한해의 끝이 다가오는 어귀에서 마중물처럼 겨울을 당겨오는 계절을 보내며 가을이 가진 특색처럼 자신의 색채를 뽐내는 당신의 계절이 오길 바란다. 당신이 열매 맺고 당신을 꽃피울 그 아름다운 계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