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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규김 Nov 19. 2021

그때는 수능이 크게만 보였지

어른이 되어 아이들에게 미안했던건 여전히 한번의 시험과 대입이 인생의 대부분을 결정짓는 것 같은 세상에서 살게했다는 것이다.


나 역시 그때는 몰랐다. 그게 전부인줄로만 알았다. 한번의 시험에 사람이 죽고 살았다. 많은 이들이 인생을 걸고서 시험에 메달렸고 그것으로 사람을 줄세우고 평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코 인간의 존엄함은 그런 시험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목숨을 걸 필요는 없었다는 것이다. 


시간은 계속 우리를 재촉하며 한 문제라도 더 풀도록 몰아넣는다. 조금만 더 준비하며 완전에 완전을 기해서 완벽한 시험을 치룰 수 있도록 한다. 


그러나  사람들 위에 서서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숫자는 정해져있었다. 즉 시험을 봄으로써 인생에 좋은 무언가가 생길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중 하나가 되기 위해 사람들은 목숨을 걸다시피했다. 


하도 사람을 평가하고 줄세우는걸 좋아하는 문화 아래 살아와서 그런걸까. 그런게 중요한줄 알았고 남보다 잘나야하는게 인생의 전부인줄 알았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공부를 해도 넘을 수 없는 산들이 있었고 나는 결국 최고가 되지 못했다. 적어도 원하는 등수를 얻을 수 있었지만 내 앞뒤로 서있는 사람들도 그랬을까 한참을 고민했다. 


서울에 살던 대학생 무렵 나는 수능이 끝나면 얼마동안 계속 한강의 대교들을 찾아갔다. 혹시나 모를 불상사를 막을 생각이었다. 다리위를 걷다보면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이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들 모두 누군가를 위로한 준비가 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다행이었던건 다리를 찾아온 학생들을 마주칠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적어도 그 해에는 아이들이 다리 위에서 뛰어내리진 않았으니...


올해도 수능이 끝났다. 상당히 어려웠던 모양이다. 등급컷은 매우 높았고 학생들은 어려운 심정으로 가채점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알까. 나의 공부는 오히려 대학교에 들어가서 시작했었고, 나의 인생을 바꾼 시도들도 수능 이후에나 일어난 일들이었다. 그 뒤로 가지게된 꿈과 목표가 나를 움직였고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다는 것이다. 


한번의 시험이 인생을 결정하기엔 삶은 생각보다 길고, 한번의 시험이 가치를 결정하기엔 사람의 가능성은 너무나 크다. 그렇기 때문에 시험의 결과가 당신의 인생을 조금은 바꿀 수 있지만 완전히 망쳐버릴수는 없다는 것을 꼭 알려주고 싶었다. 


11월이 중간을 넘어가는 어느 지점에도 또 이렇게 심심한 위로를 세상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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