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일은 뜻대로 되지 않는 법이다. 그리고 글 쓰는 일에도 슬럼프는 찾아온다. 자신있던 분야에서, 좋아하는 부분에서 아무리 애써도 한문장 조차 시작하는게 내키지 않을 때 한참을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려 놓고서 빈 화면을 응시한다. 아무런 생각이 없다. 손가락을 움직이게하는 원동력이 더이상 마음 속에서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글을 사랑하지 않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조금 다른 문제가 시작된다. 이제는 괴로워도 쓸 수 밖에 없는 글에 눈이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쓰고 싶었던 주제들을 빠르게 소진하고서 이젠 쓰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주제의 글들이 남게 된다. 그리고 그 때부터 글쟁이로서의 글쓰기가 시작된다.
요즘은 글이 써지지 않는다고 하소연을 할 때가 잦아졌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지금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고 여러가지 일로 마음에 여유가 없어 느긋하게 앉아 글을 쓰는게 어떤 죄악감이 느껴지는 사치의 영역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지만 여태껏 어떻게든 앉아서 한개의 문장이라도 단 한 낱말이라도 더 내뱉을 수 있기를 한참을 씨름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말이다. 그만큼 내가 쓴다는 일을 사랑해서 그런걸까. 이 애증의 관계 속에 있는 집필이라는 행위를 그만둘 수 없게 만드는 오기는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 그렇게 잘 넘어가지도 않는 쓴 커피를 마시며 가능한 맑은 정신을 유지한채로 글을 쓰려고 해왔다.
그러나 이젠 그런 것도 그만두었다. 완전히 방전이 되어버린 것이다. 자리에 앉기도 전부터 머릿속이 멍하더니 별안간 안개가 낀듯이 아무런 아이디어도 떠오르지 않는다. 마치 늪에 빠진듯 손가락은 천천히 운동을 잃어가며 굳은 머리 처럼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한참을 글쓰기를 방치했다. 그렇다고해서 주위를 환기시킬만한 많은 경험을 하고 온 것도 아니다. 나는 단지 현실에 가득한 일정을 소화하며 잠시라도 글쓰기를 잊어보려고 했던 것이다. 그렇게 살아서 행복했나 묻는다면 그렇지 않았다라고 말할 수 있다.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일은 막힘 없이 무언가가 써지는 상태였다. 그것이 되지 않으니 무슨 일이고 마음 처럼 풀릴 리가 없었다.
그러다 느낀 것이 한계와 돌파였다. 이런 상황일수록 써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를 써야겠다는 집착에서 벗어나 득도를 한 것일까. 오히려 무조건 써야겠다는 생각을 버리니 머릿속을 막고 있던 매듭이 풀리는 듯 했다. 나는 진정 자유로워진 것이다.
무슨 말을 하려고 이 글을 적었을까. 그래. 나는 내 글쓰기에 대한 일기를 남기고 싶었다. 결국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서 쓰는 사람만이 이 난관을 이겨낼 수 있다는 것. 생각이 나지 않을땐 발상에 대한 무거운 의무감을 내려놓을 때도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지금도 글은 잘 쓰여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는 어떻게든 글은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