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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규김 Mar 04. 2022

전쟁의 수혜자는 전선에 나서지 않는다

전쟁의 수혜자는 전선에 나서지 않는다. 평범하게 살아가던 젊은이들의 손에 총을 쥐어주고 억지로 살인자로 만든다. 명분이 없는 전쟁은 무고한 이들이 정치적으로 이용당하는 현실을 조소하듯이 풀이 자라던 땅 위로 피를 흩뿌린다. 


전쟁은 국가 권력이 통제하는 거대한 폭력을 전개하지만 그들에게 주먹은 휘두르는 도구일 뿐이며 부서지고 찢어진 손의 상처는 싸매고 위로할 것이 아니었다. 


기득권자와 권력층의 철저한 손익계산은 가장 불합리한 일에 명분을 부여하고 자신들에게 총구를 겨누지 못할 약한자들을 싸움터로 떠밀어 보낸다. 그렇게 누군가는 가장 소중한 이들을 잃고, 누군가는 자신을 잃어버린다.


전쟁의 아이러니는 그렇다. 전쟁에 저항할 힘이 없는 이들은 최전방에서 폭력을 휘둘러야한다. 그러나 권력을 손에 움켜쥔 이들은 뒤에 숨어 열심히 주판을 굴리며 끝까지 이기적인 자기보신주의를 고수한다.


압도적인 폭력이 만들어놓은 전쟁억제력은 오히려 눈에 보이는 평화라는 역설을 만들어냈다. 예수의 시대에 그것은 로마의 평화 곧 황제의 복음이었고, 오늘 날에 이르러는 패권국가에 의한 산발적인 평화가 이뤄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예수가 전하려 했던 평안과는 사뭇 달랐다. 예수는 검을 잡기보다 채찍에 맞기를 택했고, 원수를 죽이기보다 사랑하라고 말하면서 십자가에 달렸다. 도저히 현실성을 찾아볼 수 없는 이상론자의 호소였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사랑이라는 계명을 믿는다. 어느새 기득권의 대변자가 된 교회의 기복주의와 자신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온갖 부조리를 휘두르는 종교지도자들을 보면 예수의 철학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비대하고 부패한 이익집단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스스로를 목회자라 부르며 열심히 자기편을 만들고 밖으로는 불쌍한 이들을 배척한다. 예수의 이름을 딴 백성이 예수의 계명을 대변하고 있지 않은 세상은 크게보나 작게보나 소망이란 것을 찾아볼수가 없었다.


나는 여전히 예수가 전하고자 했던 세상. 그 나라가 옳다고 믿는다. 아무런 힘도 없는 이상론으로 철저히 현실적인 방법으로 세상을 바꿔야한다. 누구보다 가망 없는 싸움터에서 그의 죽음이 곧 그가 완전히 옳았음을 말하는 증거가 되었기 때문에 그리고 여전히 세상에는 사랑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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