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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규김 Mar 14. 2023

사순절. 종행(從行)

사순의 여정이 중반에 이르니 고비가 지나듯 꽃샘추위 바람이 불어옵니다. 봄에 깨어난 새순이 긴 시간을 위해 가장 먼저 맞는 위기가 찾아온 것입니다. 벚꽃과 매화가 거리를 메우기 전에 우리는 환희에 앞선 고난을 경험합니다. 이 고난은 일상적인 것이며, 아침과 저녁의 영역에 숨어 문득 떠오를 뿐입니다.


그러니 길게 염려할 것 없습니다. 한참 일에 몰두하다 보면 잊을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변에 아름다움이 없어 돌아볼 기회 없이 한 달을 보내고 나면 길 가던 중에 눈길을 사로잡을 찬란한 공간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 순간에 발길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니 어느덧 따스한 햇살이 적당히 시원한 바람과 함께 세상에 가득함을 깨닫게 되는 것이지요.


아무런 기여 없이 누리는 자연은 지분을 주장하는 이 가 없기 때문에 더욱 은혜로운 것이라 일컫습니다. 우리는 그저 뚜벅뚜벅 삶을 걷노라면 언젠가는 만날 수 있는 그런 것들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듯 자연도 피우고 저문다면, 자연이 생몰 하듯 우리도 살아갑니다. 각자의 겨울을 겪노라면, 이와 같이 꽃이 피어나리라는 소망이 한 움큼 녹길 기다리는 땅속에 남아있을 것입니다.


꽃은 자신의 의지로 비를 내리고 해를 비추지 않습니다. 날이 바뀌고 바람이 부는 것은 전적으로 꽃이 관장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바뀌는 계절을 잘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모든 소명을 마치게 됩니다. 하늘을 따라 살다 죽는 것이 곧 꽃이 살아야 할 길이며, 살아가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세상에 향기를 뿌리고, 다음 세대를 위한 열매와 씨앗을 남깁니다. 가장 소중하고 달콤한 정수만을 담아내 전한 그것이 바로 우리의 아이들입니다.


인간도 시간을 따라갑니다. 자신이 어쩔 수 없는 긴 계절을 그저 따라 걷는 것만으로도 인간은 어느덧 스스로의 소명을 모두 마치게 됩니다. 하나님을 따라 살다 죽는 것이 곧 인간이 살아야 할 길이며, 살아가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종려주일이 되는 날은 이미 만개한 벚꽃들을 만난 이후일 것입니다. 그들을 추위를 이겨낸 것만으로도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냅니다. 어두운 날들을 지날 사람의 모습도 이와 같습니다. 삶의 모양은 꽃잎의 종류만큼 다양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의 삶은 보다 아름답고 향기로울 것입니다. 당신이 견딘 모든 시간이 아름다운 당신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잘 살아가십시오. 겨울을 견디고 당신의 향기를 전하십시오. 그것이 육신을 입은 하나님 곧 그리스도 예수를 따라 걷는 우리네의 여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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