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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 뒤돌아보면, 언제나 그 정도

by 여름의끝

뒤돌아보면, 언제나 그 정도

밤늦게 퇴근해 아파트 단지 입구의 조용한 산책로를 걸을 때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들곤 한다.
뭐든지 마음만 먹으면 잘해낼 수 있을 거라는, 한때는 굳게 믿었던 착각이 이제는 거의 사라졌다는 생각.
나는 스스로를 은근히 똑똑한 사람이라고 여기며 살아왔지만,

이 나이가 되니 결국 별다를 것 없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다.


사실 알고 있었다.
아득한 고등학교 2~3학년 무렵, 경쟁이 싫어 작은 물로 들어갔고, 그 작은 물에서도 1등은 늘 쉽지 않았다.
대부분은 2등이었다.
그저 내 뒤에 줄지어 서 있는 사람들을 보며 안도했고, 그 정도면 괜찮다고 스스로를 달랬다.
하지만 세상은 2등을 기억하지 않는다는 말은, 조금 잔인하게도, 거의 맞는 말이었다.

지역에서는 강자로 불렸지만, 전국체전에 나갈 실력은 못 되는 정도.
그런 나에게 ‘앞으로는 스페셜리스트보다 제네럴리스트가 더 강해진다’는 누군가의 말은 오래전 벼락처럼 반가웠다.
그 말이 내 20대를 지탱했다.
근거 없는 자신감, 흐릿한 미래, 이상하게 선명했던 자존감.

그러나 30대 후반이 되면서 실력에 대한 의문이 조금씩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리고 지금, 40대 초입의 문턱을 지나온 나는 확실히 알게 되었다.

열정으로 화려하게 꾸며놓았던 저성과의 민낯과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무작정 고집을 부릴 수도, 감정적으로 울어버릴 수도 없는 위치가 되었다.
가정이 있고, 회사가 있고, 나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느린 시선이 있다.
예전의 방식, 예전의 리듬, 예전의 자만은 서서히 벗어놓아야 한다.


인정하자.
그리고 공부하자.
공부하고, 실행하자.
조용히, 꾸준히, 부끄럽지 않은 결과를 만들자.

그날도 아파트 단지의 가로등 불빛이 길게 떨어져 있었다.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손을 주머니 깊숙이 넣었다.
찬 바람 틈에서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마 인생의 진짜 1등은, 남이 알아주는 순간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순간일지도 모른다고.

그 조용한 깨달음은, 오래도록 나를 따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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