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무렵, 퇴근 버스 창가에 앉아 멀리 아파트 단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빛의 농도는 어느새 옅어져 있었고, 건물들은 모두 비슷한 높이에서 서로의 그림자를 나누어 갖고 있었다.
문득 떠오른 생각 하나가 있었다.
부정적인 생각은 다른 생각을 잡아먹는다는 것.
작고 하잘것없어 보이던 파문이 어느 순간 되돌릴 수 없는 흉곽처럼 번져 나간다는 것을 나는 여러 번 경험해 왔지만 이유를 알기는 어려웠다.
바쁘게 하루를 보냈고, 아이들은 평소처럼 건강하게 뛰어놀았고, 아내는 무표정한 듯하지만 안정된 목소리로 저녁 메뉴를 물어왔다.
그런데도 마음 한쪽에서 작은 돌멩이가 구르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는 별일 아닌 것처럼 시작하지만, 어느 순간 방향을 스스로 정하고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굴러가기 시작한다.
부정적인 생각은 중독성이 있다.
그건 마치 길가의 자잘한 잡초가 어느새 처음보다 두세 배 넓게 자라나는 것을 보는 느낌과 비슷하다.
조용하지만, 고집스럽다.
한 번 비집고 들어오면 스스로 성장하고, 때로는 모양을 바꾸면서 내 하루의 결을 조금씩 갉아먹는다.
그래서 나는 피하거나, 뛰어 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안다.
현관 앞 신발을 정리하듯, 먼저 시야에서 치워버리는 방법이 있고,
아예 그 생각의 무게에 발을 딛어 한 번에 넘어서 버리는 방법도 있다.
둘 중 어느 것이 더 옳은지는 모르지만, 둘 다 나를 조금씩 숨 쉬게 한다.
집에 들어서니 딸아이가 학교에서 그린 그림을 보여주었다.
노란 들판위를 천천히 떠다니는 구름이 그려져 있었다.
나는 그 그림을 한참 바라보았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그 고요한 하늘의 색감 속에서 방금 전까지 나를 흔들던 생각의 흔적이 잠시 희미해지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조용히 말했다.
괜찮다고.
오늘은 여기까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