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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귤 Oct 03. 2023

사라진 오구(1)

흰색인 줄 알았는데 귀와 등에 따뜻한 연한 베이지색을 가진. 지구가 끌어당기는 중력이 고작 2kg인 가벼운 존재.

누군가의 가족이다가 어느 날 우리 가족이 된 생명.

서로 구사할 수 있는 언어는 다르지만 그가 전달하는 가장 큰 목소리. 태어난 날을 모르기 때문에 발견한 5월 9일을 따서 오구라고 부르기 시작한, 우리 강아지. 오구.


오구가 사라졌다.


2023년 추석은 임시공휴일 덕에 연차를 붙여 쓰면 최장 12일을 쉴 수 있는 황금연휴다.

1년 전부터 여행 계획을 짜는 친구들은 벌써 해외로 국내로 이곳저곳 떠났지만 도무지 예약이라곤 게으른 탓에 이 한 몸 묵을 수 있는 방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

딱히 나가고 싶은 욕심은 없었지만 아쉬운 마음이 들어 하루 시간을 내 춘천을 다녀오기로 한다.


해가 부쩍 늦게 뜨기 시작한 이른 가을 아침에 오구 산책을 하고, 하얘져가는 녀석의 눈동자에 안약을 넣어주고, 물과 밥이 충분히 있는지 들여봐 준 후 외출 준비를 한다.

문밖을 나서는데 평소 출근할 때는 걱정 말고 잘 다녀오라는 건지 모른 체 하던 녀석이 오늘은 놀러 가는 것을 아는지 낑낑거리며 금방이라도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맑은 눈망울로 쳐다본다. 애써 모른 척 현관문을 닫는데, 그 녀석의 얇은 울음소리가 차가운 고철 문을 뚫고 나온다.

그 소리를 무시하고 발을 뗄 수 없었다.  결국 우리는 함께 춘천을 가기로 한다.


대 명절, 긴 연휴의 시작인 주말. 고속도로에는 차로 빼곡하다. 엉금엉금.. 걸어서 가는 게 더 빠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긴 꼬리를 물고 가는 다리 네 개 가진 고철 안에서 창 밖을 바라보는 오구.

꼬리 흔들며 가을바람을 느끼는 녀석은 인간과는 다르게 마냥 설레고 신이 났다. 오구야 계절이 바뀌는 냄새는 어떻니.

2시간이면 도착할 거리를 3시간이 지나도 한참이다. 이 녀석도 진이 빠지는지 이제 얌전히 품에 안긴다.

잠이 들랑, 잠이 들었나? 해서 고개를 꺾어 쳐다보면 눈을 떠서 말랑 한다.  오구는 지루할 때 스마트폰도 못하는데, 참 대견해.


무릎에 누룽지가 된 오구. 옷에 오구 냄새가 잔뜩 배어 춘천에 도착한다.

긴긴 고속도로를 지나 도착한 새로운 도시의 풍경. 춘천 중앙 시장과 명동 거리에 사람이 가득한 것이 보인다.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이 찾아오는 계절의 간격에 사람들은 두 계절의 옷차림을 교차하고 있지만 연휴를 맞은 풍요로운 표정은 모두가 동일하다.


춘천에서 아빠를 만난다.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운 아빠. 그전보다 부쩍 더 늙은 것 같은 아빠. 아빠 손때가 묻은 가게에 도착하니 아빠는 아침도 안 먹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오구는 아빠를 알아보고 신이 난다. 밥을 먹기로 한다. 평소 같으면 가게에서 먹었을 텐데, 그날은 이상하게도 밖에 나가서 먹기로 한다.


한 번도 오구를 집이 아닌 곳에 혼자 두고 나가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괜찮을 줄 알았다. 가게 문을 모두 꽁꽁 잠가 닫으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오랜 시간 차 안에 있어서 아직 지쳐있을 오구에게 화장실을 다녀오게 해 주고 물과 밥을 챙겨주고, 차에 있던 담요를 깔아 두고 “오구야 금방 올게” 문을 닫았다.


그리고 그날 오구는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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