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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귤 Oct 11. 2023

사라진 오구(2)

40년 넘게 한 자리에서 닭갈비를 팔고 있는 가게엔 사람이 가득하다. 30년도 더 전에 대학생이던 아빠가 친구들과 고기 한 점을 다투며 먹던 그 자리. 우리는 사람 머리수보다 더 많이 닭갈비를 주문을 한다. 부른 배만큼이나 무거워진 눈으로 돌아가는 길. 포만감에 젖어 창 밖에 내리는 선명한 초가을 햇살에 심드렁해져 있는데 흐릿한 벨소리가 들린다. “응, 전화했어?” 만복감은 마음을 온화하게 하기에, 수화기에 전달하는 아빠의 목소리가 참 다정하다. 그런데 그 목소리가 갑자기 날카롭고, 예민하고, 불안해진다.



“가게에 강아지가 없다고?”



도대체 어떤 친구길래, 명절에 무슨 농담을 저따위로 치는 거야, 장난이 진심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첫 번째.  재차 묻는 아빠의 질문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두 번째.  “지금 무슨 말하는 거야?” 내가 직접 질문해야겠다는 생각이 세 번째.  차로 5분이면 도착할 거리, 9월 말 시원하고도 따뜻한 명절 분위기가 그득한 춘천 도로 아스팔트 위에 때아닌 8월 뜨거운 불안감이 피어오른다.



가게에 뛰어 들어간다. 분명 문을 걸어 잠그는 것을 몇 번이나 확인했는데, 문이 열려있다. 너무나도 활짝. 차차에서 너무 불안했지만 “오구야!, 오구야!” 부르면 그 녀석이 항상 그랬던 것처럼, 쪼르르 뛰어올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루종일 신고 다녀서 냄새 밴 양말을 어서 벗어달라는 듯 “왕왕!” 짖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무리 불러도, 가게를, 바닥을, 구석을, 온갖 곳을 샅샅이 뒤져도, 오구가 없었다.




농담이 진심이라는 것을 나에게 일어난 상황이 현실이라는 것을 깨달은 후. 인생의 자질구레하던 목표와 다짐은 모두 오구를 찾아야겠다는 생각 하나로 바뀐다. 길도, 냄새도 낯선 미지의 세계로 가버린 오구를 찾기 위해 가족 모두 흩어진다. 낯선 곳에서 도대체 어디 간 거니, 오구야! 오구야! 떨리던 목소리는 절규로 변하고 평화로운 일상은 산산조각이 나며 조각난 사이 곳곳 절망이라는 어둠이 들어선다.



오구가 사라진 지




오후 3시. 사라진 지 30분 경과 : 오구가 사라진 지점은 춘천의 중심. 놀라 도망간 오구가 골목에 숨어있는 것은 아닐지, 멀리 가지 않았을 것이라 지레짐작하고 사라진 가게를 중심으로 근방 500m의 주택가를 수색한다. 아빠와 동생은 차를 타고, 나는 걷고 뛰면서 오구를 부른다. 무릎 아래로 지나가는 모든 생명체들을 바라본다. 보이지가 않는다. 아무리 불러도 나타나지 않는다. 도대체 어디를 간 거니. 눈물이 앞을 가려 머릿속 모든 생각이 사라지다가 이성을 끌어모아 다시 정신을 차려 걷고, 오구를 부른다. 보이지 않는 아이가, 작은 아이가 혹시나 어디서 목소리를 듣고 부름에 대답하지 않을까. 그 아이의 목소리를 기억하여 돌아오는 짖음에 귀를 기울인다.




오후 3시 30분. 사라진 지 1시간 경과 : 초등학교 이후, 어쩌면 난생처음. 진심을 담은 기도 한다. 제발 오구를 찾게 해 주세요. 제가 살면서 저지른 죄를 곱절로 되받을 테니 제발 오구에게 불행을 만들어주지 말아 주세요. 그 언제보다도 어느 때보다도 간절한 순간. 동네를 벌써 여러 바퀴 돌았는데 오구는 보이지 않는다.


"오구가 없어. 도와줘."


A에게 전화 했다. 넘치는 불안감에 감정이 이성을 치고 올라와 눈물범벅 울며 불며 횡설수설하는데 평소엔 나만큼이나 감정적인 A가 나를 진정시킨다. 그리고 A가 일러준 이성적 행동요령.  당근마켓에 강아지 사진과 인적사항, 실종 내용을 올릴 것. 인근 지구대에 연락했으니 경찰관님과 함께 실종 내용을 공유할 것. 거리에 잠시 주저앉아 A가 일러준 행동 요령을 하나씩 한다. 타자가 잘 쳐지지 않는다. 주변 지인들에게 연락을 해 SNS에 오구 사진과 실종 소식을 올려줄 수 있는지, 지인의 지인 중 춘천 거주하는 분이 계신지 도움 손길을 염원한다.




오후 4시. 사라진 지 1시간 30분 경과 : 지구대를 방문해 가게 앞에 있던 CCTV를 확인했다. 오구는 점원이 문을 열자 놀라 도망갔고, 다시 가게 안에 들어왔다가 다시 나갔다. 나를 찾으러, 가족들을 찾으러 떠난 걸까. 미안해 오구야, 내가 왜 너를 두고 나왔을까.


아무 데도 없다. 모르는 전화번호로 연락이 온 당근마켓 제보자는 실종된 지점을 기점으로 북쪽 1km 에서 오구를 봤다고 했다. 한달음에 오구를 찾아 뛰어간다. 간 곳은 여러 아파트가 모여있는 주상복합단지. 혹시 여기가 우리 집이랑 비슷해서, 집인 줄 알고 찾아온 걸까. 아파트, 지하주차장, 아파트 앞 탄천을 뛰어다니며 오구를 찾는다. 오구 비슷하게 생긴 강아지들이 있지만 모두 주인과 여유 있는 산책을 즐기고 있다. 우리도 그런 평범한 날들을 보냈었는데, 도대체 어디를 간 거니.




오후 6시. 사라진 지 3시간 경과 : 무심하게 해가 지고 있다. 마음이 더욱, 더욱 급해진다. 떨어지는 해가 무섭다. 또 다른 제보자에게 연락이 왔다. 이번에는 사라진 곳을 기점으로 남쪽 1km 초등학교 근처에서 오구를 봤다고 했다. 첫 제보자가 발견한 곳을 기준으로 하면 남쪽으로 2km인데, 어떻게 그 거리를 오고 간 걸까. 차가 쌩쌩 다지는 도로 위를 위험하게 걷다가, 길 가던 행인이 잡으려고 하자 물려고 경계하고 달아났다는 아이. 다른 강아지를 보면 왕왕 짖어대는 겁 많은 그 아이가 어디를 어떻게 돌아다니고 있을지 눈앞이 막막하다.




오후 9시. 사라진 지 6시 간 경과 : 해가 내려앉고 차가워진 춘천의 남쪽. 오구는 없다. 사람이 아무도 없는 4차선 도로에 혹시 오구가 있을까 목청껏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닌다. 평소였으면 무서워서 가지도 못했을 길. 겁에 질린 녀석이 혹시나 있을까, 어둠이 무겁게 내려앉은 구석구석 사방팔방 뛰어다니며 오구를 찾는다.




오후 11시. 사라진 지 8시간 경과 :  대학가로 향한다. 술 취한 사람들의 대화, 어쩌면 고성이 오가는 거리.  한 끼도 먹지 못한 녀석이 밥을 찾아 쓰레기 주변, 식사하는 사람들 사이를 기웃거리는 건 아닐까. 사람

없는 대학 캠퍼스를 지나 대부분 따뜻한 가족이 있는 본가로 돌아갔을 쓸쓸한 원룸촌을 벗어나 술에 취한 사람들을 붙잡아 땀에 푹 젖은 전단지를 보여주며 말한다. 하얀 말티즈 보셨나요? 귀와 등은 약간 갈색이에요.


한 가게 주인은, 며칠 전 허스키를 봤는데 혹시 그 강아지냐고, 자기도 강아지를 키우는데 걱정이 된다고 꼭 찾았으면 좋겠다고 위로와 격려의 말을 건넨다. 씩씩하게 찾다가 이내 눈시울이 붉어지지만 이내 이성을 차리고 다시 오구를 찾는다. 눈에서 더 이상 눈물이 떨어질 것이 없다고 생각되는데, 자꾸 눈물이 나고 흘린 눈물만큼이나 더욱 깊게 무섭다.




다시 오전 12시. 사라진 지 9시간 경과 : 없다. 어디에도 없다. 정말로 없다. 죄책감 느껴지게도 오른쪽 발이 아프다는 생각이 든다. 아픔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까맣게 물이 든 발톱이 보인다. 더 이상 걸음으로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원룸촌 근처에 세워진 전기 자전거 대여해서 크게 춘천을 한 바퀴 돈다. 춘천역, 남춘천역, 공지천, 명절이 되어 모두 집에서 따뜻한 저녁을 보낼 시간. 고가 도로를 달리며 차가워진 공기를 뚫고 오구를 부른다. 오구에 화답하는 강아지 소리가 들리면 멈춰 오구를 몇 번 더 불러보지만 다시 돌아가 보면 오구 목소리가 아니다. 미안해 강아지야 놀라게 해서.


1시가 되어갈 즈음, 멀리 경기도에서 오구 소식을 기다리고 있던 엄마, 이모에게 전화가 온다.

이제 그만 찾고, 처음 잃어버린 곳에서 기다려 보자고. 어떻게 그래 엄마.


마지막 힘을 낸다. 첫 제보에 의지해 잃어버린 곳에서 북쪽 1.5km 근방 중앙시장으로 다시 가보기로 한다. 배 고픈 녀석이, 급격히 쌀쌀해진 거리가 두려운 녀석이 그곳에 은신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하여.


시장 앞에 자전거를 반납하고 횡단보도를 건널 준비를 하고 있는데, 놀랍게도 아는 얼굴이 보인다.

멀리 전라북도 고창에서 A가 왔다. 낮에 이성적 행동요령을 알려준 A는 해가 떨어지도록 찾지 못한 오구를 함께 찾기 위해 400km를 달려서 춘천을 왔다.


아주 늦은 밤. 시장 앞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당근마켓! 당근마켓! 을 외치며 다니는 A를 보자마자 눈물이 또 와락 쏟아진다. 시장을 중심으로 방향을 나눠 오구를 찾기로 한다. 나는 이쪽으로 가볼게, 너는 여기로 가. 손에 꼭 쥐어준 랜턴을 가지고 고소한 냄새의 흔적이 남은 떡집 앞, 고양이 밥이 놓인 바닥, 생선 같은 것들이 팔렸던 모양인지 비린내 비슷한 냄새가 나는 가판대, 낮에는 한껏 사람 발자국이 오갔지만 이내 인기척이 사라진 텅 빈 시장에서 오구를 찾는다. 발자국의 흐름으로 시장을 뒤지다가 오르막길을 올라 청년 분위기가 물씬 나는 육림고개라는 곳을 탐색하기 시작했는데, 벌써 3개째 편의점 일회용 보조배터리로 수혈 중인 스마트폰에 메시지 알람이 뜬다. 그 알람을 보고 믿을 수 없는 눈으로 전화를 한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A의 엉엉 우는 목소리.




“오구 찾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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