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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귤 Oct 13. 2023

사라진 오구(3)

A는 춘천 중앙 시장에서 800m, 실종 장소에서 2km 떨어진 중학교에서 오구를 발견했다. 그토록 찾아 헤맨 우리 강아지. 발견당시 오구는 차가워진 밤기운에 제 체온을 유지하려고 몸을 동그랗게 말아 작게 떨고 있었다. 9시간이 넘어도 못 찾던 오구를 A가 춘천을 도착한 지 15분 만에 찾았다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 그 어느 날보다도 빠르게 달린다. 평소 달리기를 해두길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축축하고 차가운 밤 기운이 가득한 춘천중학교 앞. 어둠에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데  상당히 높은 담 너머에서 누군가 부른다. 어둠에 동공이 익숙해지자 중학교 안에 오구와 A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인다. A의 품에 쏙 안긴 작은 생명. 또렷하고 똘망한 눈, 귀와 등의 부드러운 갈색을 보니 녀석이 확실하다.



머리 위로 오구를 넘겨주고 아슬아슬하게 담을 넘은 A. 정수리 위로 또렷하게 빛이 쏟아지는 가로등 아래에서 오구가 괜찮은지 구석구석 살핀다. 너무나 감사히도 보송보송 멀쩡한 오구. 미안한 마음에 눈물이 또다시 왈칵 쏟아진다. 그런 나와 다르게 오구는 더 이상 떨지도 울지도 않고, 그냥 품에 쏙 안겨준다. 그 따뜻한 생명을 거의 10시간 만에 다시 품에 안으니, 드디어 내 몸에 땀 냄새가 가득하다는 것, 양 발목이 시큰거리며 더 이상 뛸 기운이 없다는 것이 느껴진다.



하루 온종일 굶었을 오구를 위해 편의점에서 물과 습식사료를 산다. 누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점원에게 우리 강아지를 찾았어요. 꼬질한 행색으로 말을 건넨다. 사료를 뜯자 몸을 부르르 털더니 두 캔을 한 자리에서 해치우는 오구. 가족들에게 연락을 한다. 잠 못 이루고 기다리는 엄마와 이모, 사촌들. 거리에서 실종 전단지를 나눠주고 붙이던 아빠와 동생.



9시간 동안 30km를 헤맨 발걸음은 억울하다. 그러나 감사하다. 그 넓은, 저 자신도 알지 못하는 춘천에서 15분 만에 오구를 찾아준 A.  A는 오구를 찾아주고, 갈아입을 수 있는 깔끔한 섬유유연제 향기가 밴 옷을 챙겨준다. 다시 400km를 되돌아갈 A. 또다시 긴 이별을 맞이할 우리 둘은 또 다른 의미의 슬픔으로 작별 인사를 한다.







“아침 먹자”



새벽 3시가 넘어서 도착한 집. 춘천 곳곳의 냄새가 땀과 함께 절은 몸을 씻고 쓰러진 다음날. 평화로운 연휴 아침. 따끈한 국오가 밥이 차려진 명절 식탁. 맛있는 냄새를 맡고 앞발을 쫑쫑 드는 오구. 그 평범함이 낯설다.



어느새 서늘해져 몸을 웅크린 채 오구와 아침 산책을 하는 것이, 다른 강아지를 보면 왕! 짖으려고 준비를 하는 오구의 가짜 공격이, 양말을 던져주면 냉큼 주워오는 오구의 뜀박질이, 10번 불러도 “간식”이 아니면 오지 않는 오구의 새침함이.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몰랐다는 그날의 사건이, 이제는 지나간 간절함을 더욱 선명하고 아리게 만든다.



다시 오구와 살게 된 삶. 나는 내가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절대 당연한 것이 아닌 것을 안다. 보통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삶의 작은 톱니바퀴들이 올바르게 맞물려야 한다. 그리고 그 평범함은 순식간에 산산조각 날 수 있다. 다만 언제 깨질지 모르는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은 우연감에 대한 막막함, 불안감 보다 소중함과 감사함이다. 그래서 우리는 조용하고 무사하게 흘러가는 하루에 더 감사해야 하고, 더 사랑하고, 더 집중하고 충실해야 한다. 간절함에 응대해 준 감사한 사람들 덕에 오구는 다시 우리 집에서 함께 숨을 쉬고, 같이 밥을 먹고, 계절의 흐름을 느끼며 옆에서 걸을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불완전하고 막연한 인생은 놀랍고 감사하다.



타인에게 마음을 쏟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 모두 제 몫을 다 하기 벅찬 삶을 살고 있다. 누군가를 위해 시간을 쓰고, 마음을 나누고, 걱정과 위로의 말을 나누는 것. 서로 떠오르고 지는 해를 무사히 바라보길 바라는 것. 그것은 정말로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구를 찾기 위해 큰 힘이 되어준 감사한 사람들이 있다.



가장 큰 도움을 준 A. 정신없이,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상황에서 차근차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인터넷에서 실종 전단지를 만들어 보내주었고, 그 덕에 온라인 오프라인에 오구 실종 소식을 전달할 수 있었다. 강아지 카페(m시간마다 n번 출석을 해야 등업이 된다고 하는데 그걸 등업 했다), 지역 커뮤니티, 춘천 마라톤 플랫폼에 오구 실종소식을 대신 전했다. 배달 전문 음식점에 일일이 전화를 걸어 도움을 구할 수 있는지 양해를 구했다. (명절 연휴 바쁘신 와중에 도움을 주신다고 선뜻 손을 내밀어주신 프레드피자 춘천점 사장님 감사합니다.) 경황이 없는 와중에 인근 지구대에 연락을 취해 CCTV까지 확인할 수 있었고, 오구를 찾아주었다.



지구대 순경님들의 도움으로 순찰차로 오구를 찾아볼 수 있었다. 이후 작은 오구가 들어갈 구석구석을 돌아보기 위해 차에서 내렸지만, 감사하게도 순경분들께서는 교대시간이 넘어서도 계속 인근 지역을 함께 찾아봐 주셨다.



연락이 닿은 지인 B는 춘천 시의원님을 알고 있었다. SNS에 올리는 것을 물론이고, 춘천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강아지의 실종 소식을 알릴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 새벽 1시가 넘어서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기다리던 B, 늦은 밤 안도와 위로의 말을 전해준 B에게 감사하다.



밤 12시, 오구를 찾을 때 즈음. 혹시 아직도 강아지를 못 았냐며, 같이 찾아주겠다고 도움의 손길을 내민 당근마켓 제보자. 강아지를 잃어버렸을 때 대처하는 방법을 메시지로 보내준 익명의 제보자. 딸의 손을 꼭 붙잡고 오구를 잃어버린 근방을 돌아다니시던 가족. 전단지를 보고 아직도 연락이 오는 사람들. 당근마켓은 정말 따뜻한 공간이다.


그리고 오구를 찾을 수 있도록 기도하고 기다린 가족, 지인들, 거리에서 마주친 사람들. 모두의 염원이 모여 온 우주의 힘으로 오구는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오구를 매정하게 집에 두고 갔다면, 굳이 밥을 나가서 먹지 않았다면, 오구를 두고 가지 않았다면, 누군가 문을 열지 않았다면, ~하지 않았다면이라는 후회는 순식간에 깨지는 인생의 비극 속 아무런 힘이 없는 나약하고 힘없는 가정이다. 끝까지 오구를 찾겠다는 간절함이, 낯선 얼굴들의 마음들이 행동이 오구를 다시 찾게 해 줬다.


언제가 정말 끝일지 모르겠지만, 다시 주어진 우리 둘의 막연하고 예측 불가능하고 불안정한 생에 단 한순간도 잃지 않고 한 치 앞도 모르게 함박웃음 지으며 지금 이 순간 느껴오는 감각과 주어지는 선택에 충실하며 살고 싶다. 오구야 사랑해. A야 고마워.



마지막으로 오구의 글을 읽고 함께 걱정하고 안도해 주신 주신 모든 읽은이 님들께도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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