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와서 내가 했던 말 후회하지 않기
사람들을 만나고 집에 오면 나눈 얘기에 대해 종종 후회를 하는 일이 있다. 마음과 다른 말이 나간 후 집에 와서 곱씹어 보고 '그때 왜 그런 말을 했지, 내 마음은 그게 아니었는데, 그 말은 하지 말 걸' 등 계속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들로 며칠 동안 스스로 신상을 들들 볶는다.
얼마 전에도 그랬다. 오랜만에 긴 시간 동안 얘기를 나눴다. 짧게 만날 때보다 길게 만났을 때 말실수가 더 잦은 것 같다. 할 얘기가 떨어져 정적이 흐를 때는 아무 말 대잔치처럼 갑작스레 얘기가 튀어나오기도 한다.
이 날도 이런저런 얘기가 오가고 최근 근황들을 나누고 있었다. 한 친구가 자기가 근래에 배우고 있는 것들에 대해 얘기를 했다. 그리고 배우고 있는 기관에 있는 다른 프로그램을 나에게 추천했다. 마을 여행 활동가 과정이었는데 한 달에 2번 정도 마을 곳곳을 탐방하고 그것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이라고 했다. 평소에 내가 블로그에 여행 다녀온 것을 올리는 것을 좋아하니 한 번 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이었다. 나도 전에 본 적이 있던 프로그램이었다. 그때 평소 관심 있었던 부분이라 신청하고 싶었던 기억이 났다. 아이 하교 시간과 겹쳐 아쉽게 마음을 접었었는데 친구의 제안을 들을 땐 그 부분은 잊어버리고 다른 말을 해버렸다. “사실은 나 여행 다녀온 후에 글 쓰는 거 나중에 다른 기회가 열릴까 해서 쓰는 거지 사실은 쓰고 싶지 않아. 그냥 사진만 쭉 붙였으면 좋겠어. 글까지 쓰는 게 부담스럽거든.”
내 얘기를 듣고 있던 친구들은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고 난 고개를 숙였다. 말을 뱉어놓은 순간 후회를 했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진 뒤였다. 제안을 한 친구의 뻘쭘함과 시니컬하게 이상한 대답을 툭 뱉어놓은 내 덕분에 분위기는 싸해졌고 다행히 다른 친구가 분위기를 전환시킨 덕분에 스르륵 얘기가 넘어갔다.(이런 친구가 있어서 다행이다.)
그렇게 얘기를 하고 난 후 집에 돌아와서도 내 마음은 계속 그 자리, 그 시간에 머물러 있었다. 그때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여행 다니는 것을 좋아하니 여행기를 쓰면 나중에 추억 여행을 하기에도 좋고 더불어 이걸 기회로 돈도 벌게 되면 좋겠다는 얘기를 입버릇처럼 했었다. 그러고선 이제 와서 딴소리를 하고 있으니 친구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왜 이렇게 마음이 변덕스러울까, 왜 그렇게밖에 말하지 못했을까. 좀처럼 그 생각들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이틀을 꼬박 그렇게 마음을 볶은 후 천천히 그때 상황을 돌이켜 봤다. 요즘 내 마음 상태는 사실 엉망이다. 친구와 갈등으로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느라 마음이 힘들었고, 일찍 일어나지 못하니 글을 쓸 시간이 없고, 블로그든 브런치든 글을 올리지 못하는 것에 대해 부담이 컸다. 누가 억지로 등 떠미는 것도 아닌데 다른 사람이 글을 올리는 것을 볼 때마다 한 글자도 쓰지 못하고 있는 나는 지금 뭐 하고 있는 건지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있었다. 잘 쓰는 글도 아닌데 누가 봐주기나 할까 싶기도 하고, 차라리 이럴 바엔 당장 나가서 알바라도 하는 게 돈을 벌기 더 쉽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었다. 이래저래 복잡한 마음에 감정을 숨기지도 못하는 나는 큰 감정의 기복으로 나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하루하루를 겪고 있었다.
글쓰기에 대한 부담감이 있는 상태로 친구의 제안을 들으니 ‘글쓰기’라는 말이 유독 크게 들렸던 것 같다. 심란한 마음을 숨겨놓고 나갔던 모임에서 툭하고 그곳을 건드리니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이 튀어나갔던 모양이다. 사실은 그게 아닌데. 나 글 쓰는 거 좋아하는데. 단지 요즘 마음이 심란하니 움직이기 싫어지고, 일찍 못 일어나고, 글 쓰는 시간을 못 만들고, 글감은 쌓여있는데 움직이지 않는 손가락에 실망하고 있었던 것뿐인데.
친구에게 연락해 사과했다. 내 감정의 풍파로 친구의 선의까지 무시한 것 같아 미안했던 마음을 표현했다. 그리고 반성했다.
김신회 님의 책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구나>에서 이런 구절이 나온다.
"예전에는요, 관계 안에서 서운한 일이 있거나 오해가 생기면 늘 상대방 생각을 먼저 했어요. (중략) 근데 언젠가부터는요. 그냥 나를 먼저 생각해요. 이를테면 내가 왜 지금 기분이 안 좋지? 내가 그 말에 왜 그렇게 화가 났을까? 이렇게 내 감정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면 거기엔 늘 분명한 이유가 있더라고요."
관계에 관한 이야기지만 모임 후 나눈 얘기에 집에 와 곱씹는 일이 많은 나는 이 말이 위안이 됐다. 내 행동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그때 내가 다른 일로 마음이 힘들었구나.
그때 내가 시간이 없어 답답했구나.
그때 내가 글을 쓰는 것에 부담이 있었구나.
내가 친구의 제안에 생각과는 다른 말을 했던 것은 그때 내 마음이 그랬기 때문이다. 내 기분과 감정 상태가 편안한 상태였다면 차분하게 설명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도 생각해봤지만 시간이 맞지 않아 못하게 됐다고. 그러니 자책하지 않기로 했다. 그때 내 마음은 힘든 상태였으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다만, 늘 그럴 순 없겠지만 평소 좀 더 편안한 상태가 될 수 있도록 있도록 마음을 다지는 연습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생각과 느낌을 잘 전달해 집에 와서 후회하고 싶지 않다면 힘든 마음은 훌훌 잘 털어버리고 고민되는 것을 정리해두는 연습을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때그때 조금씩 정리해두면 나도 편안해지고 상대의 마음을 들을 여유도 갖게 할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