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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귤곰 May 13. 2022

파마를 비웠습니다

소박한 삶




긴 머리를 싹둑 잘랐다. 단발로. 6개월에 한 번, 일 년에 두 번 정도 매직셋팅펌(뿌리쪽은 매직펌, 아래쪽은 웨이브펌)을 하던 머리였다. 미용실에서는 펌이 잘 안 풀리는 머리라고 했지만 4개월이 지나면 끝 쪽 머리카락이 날리면서 지저분해지기 시작했다. 펌 가격이 만만치 않으니 버티고 버티다가 6개월까지 기다려 한 번씩 하곤 했다.


한 번 펌을 할 때마다 금액은 대략 15~20만 원 정도. 거기에 새치도 많이 있어 2달에 한 번씩 염색까지 하면 일 년에 못해도 60만 원은 든다. 머릿결이 좋지 않은 편이라 펌 할 때마다 매번 영양을 넣어야 하기 때문에 돈이 많이 든다. 그러니 머리 한 번 하려면 큰 마음먹고 해야 된다. 머리를 할 상황이 되면 좀 더 저렴한 미용실을 찾아보기도 하지만 비싼 곳이나 싼 곳이나 복불복이다. 미용사 나름이다. 선택을 잘못해 머리를 망치면 기분은 정말 최악이다. 돈은 돈대로 쓰고 기분전환도 안되고 스타일 변신도 안되고.


머리에 쓰는 돈이 너무 아깝게 느껴졌다. 매번 이렇게 비싼 돈 주고 머리를 해야 하나. 머리를 망칠까 봐 걱정도 되고. 이참에 단발로 자르면 어떨까 생각했다. 긴 머리를 단발로 자른다고 하면 분명 미용실에서는 “고객님~ 펌 안 하시면 관리하기 힘드세요! 단발은 더 관리하기 힘드니 꼭 펌 하셔야 해요!” 할 것 같았다. 미용실의 호객이 싫어 집에서 자를까 고민도 했다. 앞은 거울보고 자른다 해도 뒤는 어쩌지. 도무지 엄두가 나질 않았다. 한 번은 미용실에서 잘라야겠다. 미용사의 말에 넘어가지 않겠다는 굳은 마음을 먹고 의자에 앉았다. “머리가 자꾸 상해서 이제 더 이상 펌 하기가 싫네요 ㅠㅠ 그냥 단발로 자르고 싶어요!” 다행히 별 얘기 없이 단발로 잘라줬다.




야호. 의외로 괜찮았다. 내 머리카락은 반곱슬이니 펌을 안 하면 머리가 지저분하게 날릴 것 같다고 생각했던 나의 오랜 신념(?)이 깨졌다. 미용실의 말만 듣고 두려움에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는데. 이렇게 성공하니 그동안 생각의 틀에 나를 가뒀다는 걸 알게 됐다. 더 이상 머리에 많은 돈을 들이지 않겠다는 결심이 나의 틀 하나를 깼다.


단발은 손질이 어렵다고 주변에서도 조언했지만 긴 머리를 말리면서 손으로 돌돌 웨이브를 잡아주는 시간보다 짧은 머리를 말리면서 롤빗으로 모양을 잡아주는 시간이 훨씬 짧았다. 머리가 가벼워지면서 몸도 가벼워지고 덩달아 마음도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여자에게 헤어스타일의 변화란 기분전환이라는 마법을 불러오는 법이니까.


적게 벌고 적게 쓰는 소박한 삶을 살기로 결심하고 제일 처음 실행에 옮긴 일이라 더 의미가 큰 것 같다. 아침마다 거울을 통해 보는 짧아진 머리는 내 결심을 잊지 않게 해 준다. 시간이 지날수록, 머리카락이 자라는 만큼 나의 바람들이 희미해질 수도 있다. 다행인 것은 단발은 2달에 한 번은 머리를 잘라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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