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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귤곰 Jul 16. 2022

집에서 노는 거 아니거든

초등 언니의 일상



“학교 가기 싫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아이가 했던 말이다. 30분 전에 남편이 했던 말과 같아서 깜짝 놀랐다. 며칠 전 여행에서 너무 불태웠는지 아이는 며칠째 피곤이 풀리지 않는 것 같다. 사실 나도 그래.


등교 준비를 다 마치고 나서 학교 가기 싫다고 다시 얘기하길래 “나도.”라고 했더니 되묻는다.


“엄마는 학교 안 가잖아.”

“맞아. 그런데 엄마도 집에서 노는 건 아니니까.”

“엄마 집에서 놀잖아.”


갑자기 욱하고 올라왔다. 아니, 평소에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거야?


그러면 안 되는 걸 알지만 일장연설을 시작했다. 내가 집에서 노는 줄 아냐, 내가 청소, 빨래, 밥 안 하면 네가 다 할 거냐, 내가 회사를 안 가는 이유는 너를 케어하기 위해서고 회사를 가면 다른 친구들처럼 네가 그렇게 싫어하는 학원 6시까지 다녀야 하고, 엄마도 일하고 싶은데 포기한 거다, 블라블라블라……


늘 말이 길어 문제다. 웃으며 장난기 있는 말로 했던 말인데 갑자기 화를 내는 엄마의 반응에 아이도 표정이 변하기 시작했다. 잔뜩 기분이 상해 현관문을 나서며 휴대폰 못 가져간다는 말(충전 못 해서)을 할 때도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도 화가 나 있었으니까. 아이가 어릴 땐 엄마가 옆에 있는 걸 좋아하지만 어느 정도 자라면 일하는 엄마를 좋아한다고 하더니. 내 아이도 그런 건가 싶은 생각도 들어 야속했다. 일을 그만둔 가장 큰 이유는 너를 더 잘 돌보고 싶어서였단 말이다!




내가 끝까지 대답을 하지 않자 결국 울음을 터뜨리며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아이가 사과하면 내가 또 어른답지 않게 굴었구나 싶어 후회가 된다. 누가 애고 누가 어른인지. 또 먼저 사과하는 건 아이다.


학교에 데려다주지 않기로 했지만 이대로 보내면 안 되겠다 싶어 신발을 신고 따라나섰다.


“엄마는 자라면서 일을 안 하거나 돈을 안 벌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인 것 같은 분위기에서 자랐어. 그래서 엄마가 그런 말을 들으면 조금 많이 화가 나. 실은 엄마도 집에 있으면서 몸이 편하기도 하지만 마음은 늘 불편하거든. 집에 있어도 엄마는 집안일로 늘 바쁘고 공부도 하고 그래. 다 규리 탓이 아닌데 규리 때문인 것처럼 말해서 미안해. 그리고 먼저 사과해줘서 고마워.”


꼭 안아주고 나서 학교에 들여보냈다. 다행히 웃는 얼굴로 열심히 손을 흔들며 들어갔다. 아이를 보내고 집에 돌아오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이에게 했던 말은 사실은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인 것 같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너는 충분히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말을. 남편에게, 주변 사람들에게 계속 들어도 채워지지 않는 이 마음은 사실은 나의 엄마에게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아이는 엄마에게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 있어달라고 하지 않았다.  선택이었다. 아이를 키우며 ‘ 때문에, 너를 위해서라는 선의로 아이에게 강요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잠깐 주의를 놓으면 어느새 제자리로 돌아와 있다.  아는데도   되는 것은 사람이라 그런 거겠지. 언제쯤 머리와 가슴이 같이 가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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