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를 잡기 위해
한동안 책에서 손을 놓고 있었다. 책 한 권도 제대로 읽지 않은 채 두 달이 지나 있었다. 그동안 뭘 했나 싶어 돌아보니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응모 실패가 있었다. 그 후로 멍하니 있는 동안 시간은 또 흘러갔다. 자책하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마음이 무거운 건 어쩔 수 없다. 일주일이나 기간이 연장됐음에도 신청을 못했으니까. 스스로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기에 더 마음이 좋지 않다. ‘그래도 최대한 노력했으니까 됐어!’라고 생각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시간이 없다는 건 핑계에 불과하다는 걸 안다. 중요한 건 시간이 아니라 마음이다. 10월 말 마감이었고 9월 중순부터 준비를 시작했으니 대략 1달 반 정도 된다. 그동안 콘셉트도 잡지 못하고 시간을 보낸 게 반, 글이 안 써져서 시간을 보낸 게 반이다. 이래서 작가들이 미리부터 준비해야 한다고 했나 보다. 마감이 다가오니 조급해져 글이 더 안 써졌다. 초안만 써서 보낼 순 없으니 퇴고도 해야 하는데 마감은 다가오니 막막했다. 그러다 보니 못된 습관이 또 나왔다.
이번엔 그냥 포기하자.
다음에 기회가 또 있겠지.
좋게 생각하면 어차피 신청 못했으니 다음 기회에 다시 제대로 준비하자는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이 생각을 할 때의 나를 알고 있다. 포기하기 위해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말이라는 걸. 그리고 얼마 후 또 중간에 포기해버린 나에게 실망하게 됐다. 이래서 뭘 하겠나 싶었다.
오랜만에 박웅현님의 책 [여덟 단어]를 다시 들었다. 한참 자기 계발에 열을 올리며 성장에 집중할 땐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그냥 열심히 공부만 하면 되니까. 그러다 성과가 나지 않아 허탈해졌고 주저앉았고 불안했다. 이렇게 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나 싶었다. 지금과 비슷했다. 그때 읽게 된 이 책의 문장에서 위안을 얻었다. 삶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라는 말에.
(...) 그래요, 인생은 기필코 되는 게 아닙니다. 뭔가를 이루려 하지 말고 흘러가세요.
최근엔 젊은 사람들에게 '꿈꾸지 말라'는 강의를 합니다. 제발 꿈 좀 꾸지 말라는 게 강의의 주요 포인트예요. 우리 제발 꿈꾸지 말고 삽시다. 꾸려면 오늘 하루를 어떻게 잘 살지, 그런 작은 꿈을 꾸면서 삽시다. 교수가 되고 말 테야, 큰 사람이 될 거야, 꼭 대기업에 취직해 임원이 되겠어, 연봉 3억을 받겠어, 이런 꿈 좀 꾸지 말고 말입니다.
그래. 마음을 편하게 갖자. 목표를 향해 달리지 말고 오늘 공부 못했다고 자책하지 말고 성과가 나지 않는다고 포기하지 말고 그저 오늘, 순간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자. 이런 마음을 갖게 됐다. 그런데 나는 단단히 오해하고 있었던 거다. 꿈꾸지 말라는 말이 오늘을 성실히 보내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었는데 말이다.
육아를 하며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내 시간을 만드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시간이 1도 없냐, 생각해보면 그건 아니다. 브런치 북을 준비하는 동안 아이가 학교에 가 있는 오전에는 시간이 있었다. 그 시간을 '잠깐 검색해봐야지'로 시작한 웹서핑으로 흘려보낸 적이 많았다. 글이 안 써지니 밥을 일찍 먹어야겠다고 켰던 TV는 꺼지지 않았다. 마음은 무거웠지만 실상은 회피하고 싶었다. 잘할 수 없을까 봐. 무슨 글을 써야 할지 몰라서. 막막하니 자꾸 도망가고 싶었다.
인생에 공짜는 없어요. 하지만 어떤 인생이든 어떤 형태가 될지 모르지만 반드시 기회가 찾아옵니다. 그러니 이들처럼 내가 가진 것을 들여다보고 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준비해야 하죠. 내가 뭘 봐야 하는지, 다른 사람과 어떻게 다른지, 과연 강판권의 농업과 나무가 나에게는 무엇인지 찾아야 합니다. 나만 가질 수 있는 무기 하나쯤 마련해놓는 것, 거기서 인생의 승부가 갈리는 겁니다.
꿈꾸지 말라고 해서 오늘을 놀고먹으라는 얘기가 아니라고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성실히 수행하면 기회는 온다고. 그러니 오늘을 허투루 보내지 말라는 얘기였다. 천천히 생각해보니 이번의 실패는 내가 보낸 불성실한 하루의 결과였다. 두려워서 손에 잡히지 않던 키보드를 결국 놓아버린 결과였다.
원대한 꿈을 꾸지 않더라도 어떤 형태가 될지 모를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싶다면 두려움을 극복해야 할 순간이 오는 것 같다. 그럭저럭 잘 극복해낸다면 이 한 번의 경험이 그다음에 또 다른 기회를 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것이 남들이 정해놓은 기준이 아니라 내 안에서 찾을 수 있는 즐거움이면 더 좋을 것 같다.
그래서 이번 실패에도 나는 좌절하진 않으려 한다. '어차피 난 이런 사람이구나' 하고 나를 포기하진 않으려 한다. 나만의 무기를 찾는 일에 매일 도전할 거다. 지금은 읽고 쓰는 일이 재밌지만 어렵고 뿌듯하지만 피하고 싶은 일이다.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적어도 할 수 있는 최소한만큼, 하루 한 줄이라도 쓰면서 준비할 거다.
다음에 다시 기회가 있을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