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로 깨닫는 일상
며칠을 얘기하다 또 싸우고 말았다. 아니 내가 일방적으로 화를 냈다는 쪽이 맞다. 새 학기가 다가오니 각종 수업들이 오픈했다. 지자체 센터에는 저렴하게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많다. 주변에서도 각종 학원에 등록했다는 얘기가 들리니 우리 아이도하나쯤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공부하길 바라는 건 아니지만 배움은 필요한 학생이라는 신분이니까. 마음에 드는 것 하나는 있겠지 싶어 아이에게 프로그램들을 죽 들려줬다. 영어, 과학, 농구, 축구, 줄넘기, 보드게임, 독서토론 등.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안 하고 싶어."
늘 그랬다. 요즘은 도서관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좋은 프로그램을 무료 또는 적은 비용으로 운영한다. 사교육비 부담 없이 아이에게 배울 기회를 줄 수 있어 얼마나 좋은지. 나 또한 도서관을 통해 각종 강의를 들으며 공부하는데 아주 유용하고 좋았다. 이용할 수 있을 때 이런 시스템을 이용하면 좋을 텐데. 아이의 대답은 늘 No였다. 억지로 신청하기도 했지만 그러면 그 수업에 반도 들어가지 못했다. 왜 다 배우기 싫지? 좋은 프로그램을 무료로 해주는데 대체 왜?
앞으로 어른이 되어 혼자 살아가려면 지금은 배우는 게 필요하다고 아이에게 얘기했다. 이런 프로그램들을 배우진 않아도 되지만 앞으로 네가 어떻게 살아갈지 잘 생각해봐야 한다고. 그래서 엄마는 너에게 뭐가 맞는지, 뭘 좋아하는지 알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다고. 그런데 이렇게 다 싫다고 하니 속이 상한다고 말했다. 물론 잔소리로 들었겠지만 이 말은 해야겠다 싶었다.
시간이 조금 지난 후 아이가 다가와 말했다. 옷 만드는 걸 하고 싶다고. 응? 옷을 만들고 싶다고? 남들 배우는 일반적인 클래스들이 많은데 옷 만들기라니. 초등학생에게 미싱을 가르쳐주는 곳이 있나. 그래도 오랜만에 하고 싶다는 게 생겨 부지런히 검색해 봤다. 지자체 센터나 일반 문화센터는 없었지만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개인 공방을 찾았다. 초등학생 4학년부터 받는다고 했지만 다행히 원데이 클래스를 해주겠다고 했다.
내가 먼저 시키는 일(대체로 공부)을 할 때는 하기 싫어 미루는 아이를 억지로 끌어다 자리에 앉혀야 한다. 해야 하는 일을 해야 하고 싶은 일도 하는 거라고 반협박을 해야 한다. 하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때는 날짜와 시간을 잊지 않는다. 불평이 없다. 기다리기까지 한다. 그걸 알지만 아이에게 시키고 싶은 것과 아이가 하고 싶은 것의 거리는 늘 멀다. 그 거리를 좁히는 방법은 결국 아이가 해야하는 일이니 스스로 찾게 기다려줘야 한다는 것. 잘 안다. 자꾸 잊으니 문제지만.(특히 학기 초가 심하다.)
미싱 원데이 클래스를 마친 아이의 표정은 밝았다. 손에는 스스로 만든 첫 작품이 들려 있었다. 다음에 또 하고 싶다고, 미싱을 배우면 인형옷도 만들 수 있다고 신나했다.
"이 이불 바느질들도 미싱으로 한 건가 봐. 미싱으로 하면 실이 이렇게 되더라고. 노루발은 왜 그렇게 안 내리게 되는지 모르겠어. 오늘도 여러 번 까먹었다니까~"
침대에 누워 종알종알 얘기하는 예쁜 입을 보니 아이가 하고 싶어하는 것을 더 찾아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