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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귤곰 Apr 18. 2023

자꾸 아이와 부딪힌다

초등언니 일상



아이는 아침에 밥을 먹으면서 만화를 본다. 음식을 상에 준비해 두고 TV를 켠 후 밥을 먹는다. 만화는 대체로 30분 정도. 나는 한 편을 보고 난 후 다음 편을 보기 전에 준비를 다 해두고 남은 시간에 만화를 보길 바란다. 그런데 아이는 만화를 쭉 이어서 보고 준비를 하고 싶은가 보다. 그러고 나면 등교 시간이 가까워지고 서둘러 준비하느라 나를 보챈다. 


평일에 학교가 끝나면 우리가 하기로 한 공부가 있다. 하루에 2개씩 수학+집중듣기, 사자소학+집중듣기를 번갈아가며 하는 것. 하지만 놀다 보면 미루기 일쑤. 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날이 5일 중 3일이다. 친구들과의 노는 시간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시간을 우선순위에 두고 공부 시간을 정한다. 그런데 한참 놀고 들어 온 아이는 쉬고 싶은가 보다. 그리고 집에 왔으니 다른 놀이가 하고 싶어 뭉그적거리다가 이제 오늘 할 일 하자고 하면 세상 하기 싫은 얼굴로 식탁에 앉는다. 


집 안에는 아이의 흔적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현관 앞에 널브러져 있는 책가방과 신발주머니, 외투, 곳곳에 펼쳐져있는 자르고 남은 종이조 가리, 침대 옆에는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옷가지들. 본인이 한 것은 스스로 치우자고 얘기하면 대답은 잘한다. “응! 조금 있다가 치울게!” 그러고 나서 잊어버린다. 하아.. 화가 난다. 



자꾸 부딪힌다고 느낄 때면 한 번씩 생각을 정리해보곤 한다. 화가 나는 횟수가 잦아지고 아이랑 있는 게 힘들다는 건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얘기다.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 나갈 준비를 먼저 하고 만화를 봤으면 좋겠고 남들보다 적은 양의 공부니 미루지 않고 했으면 좋겠고 자기가 어질러 놓은 물건들은 스스로 정리하는 습관을 들이면 좋겠는데. 나는 이렇게 했으면 좋겠고 아이는 저렇게 했으면 좋겠고. 우리 둘의 바람이 다른 것 같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한 번은 올라오는 화를 꾹꾹 누르고 아이에게 물어봤다. 미루다 늘 안 하게 되니 먼저 하면 안 되겠냐고, 왜 자꾸 미루냐고.


“안 하고 싶어서.. 해야 되는 건 아는데 안 하고 싶어서.. 그리고 아침은 TV 마저 보고도 잘할 수 있어. 내 물건들은 자꾸 까먹어.”




아이는 벌써 10살이다. 나이가 올라갈수록 몸은 편해지지만 마음은 불편해진다. 해야 할 일들을 얘기하거나 뭔가를 제시하면 ‘왜? 안 하고 싶은데. 이따가 하면 안 돼?’라고 대답할 때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나는 점점 게이지가 올라가지만 한 걸음 뒤에서 상황을 다시 보면 내 바람을 강요할 때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이가 자라는 만큼 자신의 생각을 강하게 얘기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인 것을.


또 한 번 내려놓을 때가 왔다. 아침 준비는 스스로 시간을 조절할 수 있도록 믿어보고(내가 늦는 것도 아니니까), 공부는 얘기해서 아이가 하고 싶다는 것 한 가지만 하기로 정하고 시간은 원하는 때로 정했다. 대신 아침에 오늘 계획을 얘기하기로. 물건 정리는 바로바로 내가 같이 치우려고 한다. 


이것 말고도 일상에서 아이와 부딪힐 일들은 무궁무진하지만 그때마다 아이와 상의해 보고 조율(이라고 하고 내가 내려놓는 결론)하면서 헤쳐나가는 수밖에. 


사춘기가 벌써부터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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