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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쁘삐 Jan 15. 2023

7. 내가 나를 포기하지 않는 힘

알로카시아 프라이덱

알로카시아 프라이덱


알로카시아 프라이덱

벨벳느낌의 잎 표면 

선명한 초록색이 맘에 쏙 들어

키우기 시작한 이 친구의 이름은

알로카시아 프라이덱.


강렬한 햇빛에는 타들어가고

차가운 바람에는 시들어버린다.


습한 걸 좋아하지만

자칫하면 과습으로 죽는다.


우리 집에서 제일 까다로운 친구입니다.



프라이덱을 집으로 모셔올(?) 때만 해도 세 개 넘는 잎이 있었는데 여러모로 부족한 식물집사인 나는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하고 결국 모든 잎을 노랗게 만들어버렸다. 씁쓸한 마음으로 마지막 잎을 잘라내며 돌아오는 주말에 화분을 비우고 새 마음 새 뜻으로 다른 식물을 담겠노라고 위로했다. 프라이덱은 나와 맞지 않나보다고.


시들어버린 마지막 잎. 잘라주었다.


그런데 놀랍게도(아니, 놀랍지 않게도!) 깜빡깜빡 식물집사인 나는 이 친구를 '처리'하는 일을 잊어버렸다. (당시 집에서 키우는 식물이 워낙 많았기 때문에 하나하나 다 세심히 돌보지 못했던 탓도 크다.) 그러다가 이 친구에게 다시 시선이 머무르게 된 것은 그간 본 적 없는 놀라운 순간을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나에게도, 네게도.

일말의 기대도 없던 시간들이었는데.

그 시간들 속에 썩어 물러져 방치된 줄기가 안간힘을 쓰며 새 줄기를 내보내고 있었다.


조금씩 조금씩 새 줄기가 나왔다.


당연히 버려질 존재였다. 예민하고 어려운 친구였기때문에 다시 살려낼 자신이 전혀 없었다. 다만, 마침 내가 부지런하지 못한 탓에 우리 집에서 조금 더 체류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말도 안 되게 새 순이 나다니.


마침내 다시 나타난 잎 한 장


프라이덱은 두 번의 탈피(?)를 거치더니 보란 듯이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냈다.


부활한 첫 번째 잎


그렇게 부활한(!) 첫 번째 잎에서는 작은 흉터들이 발견되기도 했다. 일반적인 생육환경이 아니었던 탓이다. 그래서 더 말도 안 되게 기특했다.


프라이덱은 죽지 않아


시간이 지날수록 프라이덱은 연이어 새 잎을 만들어 냈고, 꾸준히 성장해 분갈이를 요하는 상태까지 되었다.


게다가 분갈이를 위해 흙을 털어냈을 때에는 놀랍게도 많은 자구*들까지 발견됐다.

* 작은 감자 같은 알갱이로, 씨앗과 같이 식물의 DNA와 영양이 응축되어 있어 흙에 심으면 새순이 난다.


자구를 심어 얻어낸 프라이덱 유묘


아니, 이게 되네..!


프라이덱 옆에 프라이덱 옆에 프라이덱


프라이덱은 모체와 유묘 모두 쑥쑥 자라 어느덧 우리 집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흔한 식물이 되었다.

세상에 이런 일이.




경제적인 독립을 이루기까지 나의 20대는 가뿐한 순간이 거의 없었다. 무심한 시선이 서로에게 무차별적으로 꽂히는 도시에서 나는 힘겨워했다. 자주 그리고 쉽게 지쳤다. 애초에 취업을 위해 선택한 전공이었기 때문에 쉽사리 애정을 붙이지 못했다. 서울은 기회의 도시였지만, 기꺼이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곳이었다. 진로를 고민할 시간도, 전공을 바꿔볼 여력도 없었다. 무사히 그리고 빠르게 학업을 마치고 취업을 하는 것이 내 20대에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학교 뒤편에 구한 월 37만 원짜리 작은 하숙방 한 칸 대신 넓디넓은 학교 도서관에 앉아, 도서관이 문을 닫을 시간까지 그곳에서 방황하고 고민하며 하루하루 견디다, 학업유예가 가능한 기간(최대 4학기)에 이르자마자 수험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견디고 견디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때쯤 한 선택이었다. 마음껏 해주지 못해 미안해하시는 부모님께 괜찮다고 말하는 순간들의 연속. 그 순간이 더 쌓이지 않게 할 수 있는 건 그 누구도 아닌 서울에 가겠다고 선언한 바로 나 자신이었다. 가족들은 나를 걱정했지만, 가족을 제외한 대부분의 주변 사람들은 냉소적인 반응이 많았다. 수험을 하든 안 하든 서울에서 아등바등 지내는 건 다를 바 없는데, 내 주변의 대부분은 그렇지 않았으니까. 더 많이 경험해 보고 더 많이 놀 시간이라는 말은 내게 사치이자 불효였다.


수험생활이 힘에 부쳐올 때쯤, 컴퓨터 전원버튼을 누르듯 내 전원을 꺼버리는 상상을 했다. 한 편, 몇 초 더 누르고 싶기도 했다. 다시 시작- 그 걸 하고 싶었다. 내 인생에 남은 시간은 내가 책임지고 잘 가꿔내고 싶었던 거였다.


모두 내버리고 믿지 않아도 내가 나를 포기하지 않는 힘. 그 힘이 내 삶을 새롭게 만들어줬던 시절.

그 때가 다시 떠오른  순간이었다.


인쁘삐(IN-FP).

1995년에 태어나 24살부터 시작한 공무원 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직업적성검사를 새로 했더니 개그맨이 나와서 결국 못 그만두고 다니는 사람.

사람들을 즐겁게 하려는 욕심이 항상 드릉드릉 가득하지만, 사람 많은 곳은 싫어하는 전형적인 INFP.
먹는 식물은 죄다 죽이고 못 먹는 식물은 세상 잘 키워내는 능력치 애매한 식집사.
직장생활 꽤나 힘들어하고 일도 잘 안 맞는데 나름 또 정년퇴직은 하고 싶어서,
숨을 얕게 쉬며 회사를 다니는 20대 직장인.

어느 날 문득, 도대체 나는 왜 이런 사람인지 고민만 할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동안 마주했던 순간들을 털어놓으며 나를 이해해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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