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아바 키우기
구아바
그 유명한 광고음악의 그 구아바? 맞다.
나는 집에서 구아바도 키우고 있다.
(구아바 구아바 망고를 유혹하네 ♬)
식물에 그다지 흥미가 없는 우리 엄마와 달리, 엄마와 가장 절친한 이모님께서는 구아바 열풍이 한창이던 2000년대 초반 구아바 재배대열에 합류하셨다. 그 덕에 어릴 때부터 구아바와 구아바차는 나에게 감귤이나 보리차처럼 흔한 것이었다.
그러다 재작년 여름, 내가 홈가드닝에 몰두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이모님께서 당신이 키우는 구아바 묘목을 신입 식물집사에게 덜컥 하사하시고 말았다.
그렇게.. 구아바 키우기가 시작됐다.
- 일명 소매치기(x), 소매넣기(0)
구아바 나무는 반양지 공간에서 며칠 적응기간을 가졌다. 강렬한 햇볕이 요구되는 열대식물이지만, 대부분의 식물처럼 구아바도 환경이 바뀌었을 때 직사광까지 쬐면 몸살이 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적응 기간이 지난 뒤 나무의 상태도 확인할 겸 세 개의 화분으로 분갈이하기로 했다.
그간 나는 작은 관엽식물 위주로 키웠다 보니 나무를 분갈이한 건 처음이었는데, 뿌리가 너무 빼곡히 얽혀있고 힘도 세서 정말 어깨가 빠질 뻔했다. (그 뒤 1년가량 지났는데도 저 화분에 손도 못 대는 이유다.)
화분 표면을 마감하는 자재의 종류는 다양한 편인데, 나는 주로 마사토를 사용하는 편이다. 흙 표면을 가리는(멀칭하는) 이유는 흙 표면의 습도를 감춰서 응애를 예방하고, 흙 날림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다만 마사토는 왕겨나 펄라이트보다 무게가 꽤 나가서 화분을 무겁게 만들어버리는 큰 단점이 있다. (나는 베란다에서 키울 예정이었기 때문에 무게는 크게 상관없어서 마사토로 멀칭.)
구아바는 분갈이 후 무럭무럭 자라 새순을 마구 뿜어냈다.
완벽 적응해 주어 고마워, 우리 순둥이.
구아바 나무를 집에서 키운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열매는 언제 수확할 수 있는지 궁금해한다. 그런데 사실 나는 구아바 열매가 언제쯤 맺힐지- 글을 쓰는 지금도 전혀 모르고 크게 관심이 없다. (그래도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방금 검색한 바에 따르면, 5월에 꽃이 피고 9월에 열매를 수확한다고 한다.)
내가 이렇게 열매에 무심한(?) 집사가 된 것은 바로 파프리카 때문이다.
파프리카를 한창 먹던 여름, 손질할 때마다 나오는 씨앗을 매번 버리는 것도 아까웠고 장보기 지출도 줄일 겸 씨앗을 심어서 파프리카를 수확하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다.
(+ 그리고 실패했다.)
꽃 한 번 피우지 못하고 Y자 수형으로 남은 줄기를 버리며 허망함이 들었다. 실패했다는 사실보다 내가 이 과정을 전혀 즐기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오로지 열매를 맺기 위해 각종 영농정보를 다 뒤져가며 인위적으로 수형을 잡아주고 볼품없이 잎을 잘라주기 바빴다. 만일 열매가 목적이 아니었다면 잎이 풍성한 파프리카 나무 하나로. 버려지지 않은 채 남아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실패할지도 모를 결과에 너무나 매몰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구아바는 그렇게 키우지 않는다. 구아바 나무 생의 종착점이 '열매를 맺는 일'이며, 탄생부터 그렇게 설계되었다 할지라도. 열매를 얻기까지 한 생명이 보여 주는 멋진 순간들을 놓치고 함께 만끽하지 못한다면, 그만큼 아쉬운 일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구아바 키우기에 의문을 갖는 사람들에게 늘 이렇게 말한다.
"아, 열매가 꼭 필요하진 않아서요."
인쁘삐(IN-FP).
1995년에 태어나 24살부터 시작한 공무원 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직업적성검사를 새로 했더니 개그맨이 나와서 결국 못 그만두고 다니는 사람.
사람들을 즐겁게 하려는 욕심이 항상 드릉드릉 가득하지만, 사람 많은 곳은 싫어하는 전형적인 INFP.
먹는 식물은 죄다 죽이고 못 먹는 식물은 세상 잘 키워내는 능력치 애매한 식집사.
직장생활 꽤나 힘들어하고 일도 잘 안 맞는데 나름 또 정년퇴직은 하고 싶어서,
숨을 얕게 쉬며 회사를 다니는 20대 직장인.
어느 날 문득, 도대체 나는 왜 이런 사람인지 고민만 할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동안 마주했던 순간들을 털어놓으며 나를 이해해 보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