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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쁘삐 Apr 25. 2023

14. 나를 살피고 돌보는 일

내 마음의 구석구석

알로카시아 오도라


목대가 고구마 같이 생긴 이 식물의 이름은 ‘알로카시아-오도라’다. 알로카시아는 그 종류가 굉장히 다양한데, 이 친구는 그중에서도 대표 격에 속해 알로카시아-라고만 불리는 편이다.


*참고: 알로카시아 프라이덱은 주로 프라이덱으로 불린다


주축이 워낙 두꺼워 화분이 작아보이는 마법

알로카시아를 식재할 화분을 선택할 때는 목대의 크기 대신 뿌리와 잎의 성장 속도를 고려해야 한다. 성장이 더뎌지거나, 화분을 들어보았을 때 뿌리가 바깥으로 나온 정도라면 분갈이를 고려해 볼 만하다. 목대의 크기가 크다고 해서 그에 상응하는 큰 화분을 선택하게 되면, 쉽게 과습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과습이 오면 목대가 물러버린다.)

보기에는 대왕고구마... 같아도 뿌리가 얇고 생각만큼 많지 않은 경우가 있으니 잘 살펴야 한다.

알로카시아의 자구. 귀엽다.

다행히 우리 집에 온 알로카시아는 빠르게 잘 자라주었고, 귀여운 자구도 만들어주어 새 화분에 담아주었다.

알로카시아의 놀라운 성장


이때만 해도 좋았는데..

언제부터인가 알로는 시들시들해지기 시작했고, 새 잎도 잘 내주지 않았다. 겨울이어서 그렇겠지-하고 생각했지만 올봄이 되어도 새 잎이 나올 기미가 없었다. 불안해진 나는 알로의 목대를 잡아보았고 목대 안쪽으로 손가락이 푹-하고 들어갔다. 너무 놀란 나머지 이곳저곳을 만져보니 알고 보니 한 군데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른 곳도 깊게 파여있었다. (절규)


수술 집도 전 마음을 다잡으며 그린 그림


망했다. 전면 대수술이 필요한 시점 같았다. 예감은 적중했다. 알로의 목대를 잡아 살짝 들어 올리니 알로는 통째로 금세 쑥-하고 빠졌다. 앙상하게 몇 가닥 남지 않은 뿌리와 고사된 목대.. 분명 '뿌리파리'의 소행이었다. '뿌리파리'는 화분 표면의 흙이 습하면 어딘가에서 날아와서 순식간에 흙 속 뿌리를 갉아먹고 식물을 고사시키는 해충 중에 해충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화분 표면에 마사토와 같은 돌을 깔기도 하는데 나는 크게 뿌리파리 공격을 받은 적이 없어 다소 방심하고 흙 표면을 그대로 노출했었고.. 쑥쑥 자라는 알로를 보며 '자란다 자란다 자란다 ♬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하며 물도 아낌없이 줬다. (완벽한 뿌리파리 놀이터가 완성되었습니다.)


잔뿌리가 모두 갉아먹혔고 목대는 구멍이 났다.


울지 마 바보야 난 정말 괜찮아...




나는 사람에게 상처받고 또 쉽게 믿는 사람이었다.


나의 진심이 함부로 걷어차여 나뒹굴 때,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제일 하찮은 일에 내팽개쳐질 때,

가장 친하다 믿은 동료에게마저 일면식 없는 사람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았을 때,


나는 그들을 더 믿어주고 이해하려 하기보다

나 자신을 더 사랑해 주었어야 했다.

다른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상처가 무한히 깊어질 때까지 사람을 믿어줘서는 안 되는 법인데.. 사람에 대한 나의 값싼 믿음을 버리듯, 나는 이미 썩어서 까맣게 곪아버린 식물의 흔적을 도려냈다.


내일의 나는

나의 중심을 잃지 않고,

나 자신에게 제일 다정한 사람이고 싶다고-

남겨둔 목대를 물에 폭 담그며 생각했다.


우리 꼭 건강하게 다시 만나


인쁘삐(IN-FP).

1995년에 태어나 24살부터 시작한 공무원 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직업적성검사를 새로 했더니 개그맨이 나와서 결국 못 그만두고 다니는 사람.

사람들을 즐겁게 하려는 욕심이 항상 드릉드릉 가득하지만, 사람 많은 곳은 싫어하는 전형적인 INFP.
먹는 식물은 죄다 죽이고 못 먹는 식물은 세상 잘 키워내는 능력치 애매한 식집사.
직장생활 꽤나 힘들어하고 일도 잘 안 맞는데 나름 또 정년퇴직은 하고 싶어서, 숨을 얕게 쉬며 회사를 다니는 20대 직장인.

어느 날 문득, 도대체 나는 왜 이런 사람인지 고민만 할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동안 마주했던 순간들을 털어놓으며 나를 이해해 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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