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은 집배원

몸이 보낸 편지가 도착했다.

by 박이운

아무 이유 없이 아플 리 없다

러닝 중에 문득 통증이 올라왔다.
왼쪽 무릎 뒤쪽, 접히는 그 바로 윗부분.
딛고 밀어낼 때마다 저릿한 감각이 따라붙었다.
걸을 땐 괜찮은데, 뛸 때만 느껴지는 통증이었다.

처음엔 그저 몸이 고장 난 줄 알았다.
달리기를 무리해서 그런가,
스트레칭이 부족했나,
폼롤러를 더 굴려야 했나.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통증은 나를 멈추게 하기보다
무언가 말하고 싶은 듯,
계속 내게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오래된 기억이 불러온 몸의 문장들

기억을 더듬었다.
대학교 시절, 야구 시합 도중 도루를 하다
왼쪽 무릎을 깊게 접은 채로 미끄러졌던 기억이다.
무리가 왔다는 것이 단번에 느껴졌다.

생활이 불편하거나 운동을 하지 못할 만큼 크게 다친 건 아니었지만,
그 이후로 왼쪽은 늘 조심스러웠다.

그리고 어쩌면 그날 이후,
몸은 혼자만의 문장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왼쪽은 위험해.”
“왼발은 덜 써.”
“무게중심은 오른쪽으로.”

나는 잊었지만,
몸은 한 번도 잊지 않았으리라.
그렇게 수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몸은 그 문장들을 따라 나를 보호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몸의 언어는 통증에서 시작된다

달리는 도중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왼발은 늘 한 박자 늦었다.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 균형을 잃은 듯했다.
하지만 그건 단순한 근력의 문제가 아니었다.

몸은 나를 보호하고 있었던 거다.
예전에 다쳤던 쪽을
아직까지 지키고 있었던 거다.
그 기억을, 그대로 몸 안에 보관한 채로.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이상하게 울컥했다.
고마웠고, 미안했다.
아무 말 없이 나를 보호해 온
내 몸에게.


이건 통증이 아니라 편지였다

이제는 안다.
평소의 몸은 말을 아낀다는 것을.
하지만 아플 땐,
내게 무언가를 말하려 한다는 것을.

그건 경고가 아니라
대화의 시작이었다.

나는 달리기를 시작하고 나서야 비로소
몸이 보낸 이 오래된 편지를
꺼내 읽을 용기를 내게 되었다.

무릎 뒤쪽, 그 작고 조용한 부위에서
나를 향해 몸이 보낸 따뜻한 메시지.


답장을 쓰기로 했다

무릎 뒤쪽을 처음으로 손으로 눌러보았다.
숨을 고르고,
아무 말 없이,
그저 감각을 느끼는 시간.

폼롤러도 아니고, 스트레칭도 아닌,
그저,
내 몸에게 쓰는 답장의 의미로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그동안 모른 체해서 미안해.”
“이제 너의 말을 들을게.”
“애썼어. 지금부턴 함께 가자.”


내 몸의 문장을 읽는다

통증은 여전히 약간 남아 있다.
하지만 두렵지 않다.
이젠 안다.
이건 멈추라는 사인이 아니라,
함께 가자는 몸의 신호라는 걸.


러닝은 그렇게,
그저 앞으로 나아가는 연습이 아니라,
과거의 기억을 다르게 바라보고,
내 현재와 미래를 다시 쓰는,

나와 몸의 대화의 시작이 되어 주었다.


오늘도 진짜 나를 향해,

RUN TO RE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