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중런, 몸이 아닌 마음을 적시다

나를 씻어낸 빗 속 달리기

by 박이운

설정해 놓은 알람보다 30분 늦은 4시 기상.

어제부터 시작된 비가 오늘 오전까지 이어질 것이란 걸 알았기에

독서와 필사를 하다 평소보다 늦게 잠이 든 탓이다.

눈을 뜨고 어렵게 몸을 일으켜 창가로 갔다.

역시 비가 내리고 있다.
일단 스트레칭 매트에 누워 종아리 근육을 풀기 시작했다.


뛸까? 말까?

뛸까? 말까?

뛸까? 말까?


몸을 이리저리 비틀고 폼롤러를 굴리며

천 번도 넘게 고민했다.

결국 달리기로 했다.

러닝을 하기 전의 나였다면 오늘과 같은 결정을 내리지 않았을 거다.


달리기로 결정한 순간,

이미 난,

오늘 하루의 승자가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우중런을 위한 아이템들은 아직 갖추지 못했지만,

내게 있는 옵션들로 최대한 중무장을 하고 집을 나섰다.

평소 러닝을 도와주던 이어폰은 놓고 나왔다.

빗소리와 심장 박동과 내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달리자고 마음먹었다.


오늘은 비에 나를 맡기기로 했다.
세상도, 감정도 모두 비에 씻겨가기를 바랐다.

비가 얼굴에 닿았다.
어깨에, 팔에, 그리고 가슴팍을 적셨다.
누군가는 ‘굳이 왜?’라고 묻겠지만,


나는 알 것 같았다.
이 순간을 달리지 않으면, 오늘은 내 것이 아닐 거라는 걸.


비가 오는 날의 러닝은
몸보다 마음을 적신다.
소리도 적고, 사람도 적다.
세상은 그 어느 때보다 고요하지만,
나는 그 속에서 더욱 뚜렷해진 나를 느꼈다.

뛰는 동안 옷도 신발도 모두 비에 젖어 무거워졌지만,
내 마음만은 더 가벼워졌다.
비를 맞을수록
머릿속과 마음이 맑아졌다.


우중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문득 깨달았다.


나는 비를 맞은 게 아니라,

세상에 의해 오염된 나를 씻어낸 거라는 걸.


날씨가 허락하지 않아도,
진짜 나를 향한,

내 세상을 위한

나만의 러닝은 계속된다.


오늘도 난 달린다.

진짜 나를 향해,

RUN TO RE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