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는 하루키의 말처럼
1 시간을 넘게 뛸 생각은 없었다.
10km를 뛸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나에겐 아직 무리라고 생각했다.
그저,
가민이 제안한 6:30 페이스, 50분 러닝에 응하면서
힘들면 언제라도 중간에 멈추고 돌아오자고,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러닝이었다.
하지만 이상했다.
뛰다 보니 오기가 생겼다.
호수를 끼고 달리다 보니,
뒤로 돌아가는 것보다 한 바퀴를 끝까지 도는 것이
더 나은 귀가 루트로 느껴졌다.
안일한 생각으로 계속 달린 결과,
발목, 종아리, 무릎, 고관절까지
어디 하나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 곳이 없었다.
심지어 이렇게 오래도록 팔을 흔든 적이 없어서인지
양 어깨마저 욱신거렸다.
수십 번, 아니 수백 번이고 멈추고 싶었다.
아픈 다리와 팔을 쉬게 해 주며
천천히 걷고 싶었다.
그러다 문득,
하루키의 문장이 떠올랐다.
“만약 내 묘비명 같은 것이 있다고 하면,
그리고 그 문구를 내가 선택하는 게 가능하다면,
이렇게 써넣고 싶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그리고 러너)
1949년~20xx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어,
김종원 작가님의 말도 떠올랐다.
“한계를 느낀다는 건,
오히려 그 한계를 넘을 수 있다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신호다.”
나는 오늘,
내 한계를 만난 그 지점에서
기라성 같은 대문장가들의 문장을
내 한계를 넘을 수 있다는 신호로 삼았고,
결국,
오늘 마주한 그 한계를
넘어서고야 말았다.
왼 손목에 10km를 알리는 워치 진동이 일자
작은 탄성과 함께 속도를 천천히 줄였고,
이내 걷기 시작했다.
아파트 단지 입구를 지나
단지 내 농구장에 도착하자
내 의지와는 관계없이
그대로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아니,
실은 뒤로 벌러덩 넘어져
등을 대고 대자로 뻗은 채
하늘을 보며
가쁜 숨을 내쉬었다.
다시 일어나서 집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될 만큼
가진 힘을 모두 쏟아부은 러닝이었지만,
정말이지,
기분만은 최고였다.
계획하지도 않았고,
예상하지 못했던 오늘의 러닝이
나로 하여금 내 한계를 넘어서게 한 그 순간,
나와 진짜 나의 거리는
한 걸음,
아니,
열 걸음은 더 가까워졌다.
오늘도 나는 달린다.
한계를 향해,
그 너머에 있는
진짜 나를 만나기 위해.
RUN TO RE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