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과 필사, 어른이 되기 위한 연습
마흔이 넘은 지금도
나는 여전히 스스로를 ‘어른’이라 부르기 어색하다.
물론 사회적 나이는 충분하다.
가정을 꾸렸고,
작년엔 아이의 부모가 되었으며,
해야 할 일들을 묵묵히 감당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도 문득,
감정에 휘둘리는 나를 보거나
상황을 핑계 삼아 회피하는 내 모습을 마주할 때면
자문하게 된다.
“나는 정말 어른이 맞을까?”
예전 같았으면
"난 아직 멀었어." 하며
질문을 내동댕이쳐버렸을 나였지만,
러닝을 시작한 지금의 난
그 질문에 대한 태도를 달리하고 있었다.
새벽 4시에 눈을 뜨고,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뛰는 그 시간들 속에서
나는 스스로를 다잡는 연습을 해왔다.
하기 싫은 날에도 일어나 신발끈을 조였고,
몸 상태로 인해 달릴 수 없는 날엔 걷기라도 했다.
‘나와의 약속’을 지키려는 작지만 단단한 마음이
내 안에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금씩,
아주 조금씩,
어른이라는 존재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정말 우연히
김종원 작가님의《어른이 되기 위한 100일 필사》책을 만나
하루 한 문장씩 따라 쓰기 시작했다.
손으로 문장을 옮기는 이 단순한 행위는
내 안의 감정과 사고를 정리하는 묵묵한 시간이 되었다.
때론 내가 감당하지 못하던 감정을 조용히 붙들어주었고,
때론 내가 되고 싶은 어른의 모습을 또렷이 그리게 해 주었다.
필사하며 깨달았다.
어른스러움은 완벽함이 아니라,
멈춤과 성찰, 그리고 태도의 문제라는 걸.
이젠,
어른스러운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보면
내 안에 있는 미성숙함도 조금씩 가늠할 수 있게 됐다.
누군가의 반응에 욱하는 대신,
잠시 숨을 고르며 감정을 정돈하려 한다.
물론,
아직 부족함을 많이 느낀다.
하지만 확실한 건
지금의 난,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라는 것.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건
누군가를 책임지는 힘보다는,
스스로를 책임지는 연습일지도 모른다.
러닝과 글쓰기, 필사라는 루틴 속에서
그 연습을 이어간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의 저서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이렇게 말했다.
"만약 내 묘비명 같은 것이 있다고 하면, 그리고 그 문구를 내가 선택하는 게 가능하다면, 이렇게 써넣고 싶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그리고 러너)
1949년~20xx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이것이 지금 내가 바라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의 문장을 인용해,
만약 내 묘비명 같은 것이 있고, 그 문구를 내가 선택하는 게 가능하다면,
이렇게 써넣고 싶어졌다.
규똥
작가(그리고 러너)
1984~20xx
적어도, 끝까지 어른이 되고자 애썼다.
오늘도 나는 달린다.
그리고 멈춰 선 자리에서
읽고,
쓰고,
따라 적는다.
언젠가 진짜 어른이 될 나를 향해.
RUN TO RE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