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달리는 이유

난 어느새 너에게로 달리고 있었다

by 박이운

달리기를 시작한 지 어느덧 60일이 넘었다.
그동안 나는 러닝에 몰두했고, 나름의 루틴을 지키며 살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아내는 조심스레 마음을 꺼내놓았다.

“요즘엔 가족보다 달리기에 더 집중하는 것 같아.”


그리고, 부상이 찾아왔다.
러닝화를 신을 수 없게 된 나는 그제야 한 가지 결심을 하게 된다.

단오절 연휴,
러닝을 내려놓고 가족을 향해 달려가보기로.


방문 일주일 전, 난 아내 몰래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3일의 연휴 동안, 아내에게 이틀의 ‘육아 해방’을 선물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연휴 전날 밤 0시 30분 비행기를 타야 했다.

그것도 집에서 세 시간이나 떨어진 상하이 푸동 공항에서.

이미 표 가격은 천정부지로 올라 있었고, 공항까지의 왕복 교통비도 부담스러웠다.
용돈을 받아 생활하는 내가 감당하기는 쉽지 않은 금액이었다.

그래서 중국의 중고앱에 애플워치와 소소한 전자기기들을 올렸다.
며칠 뒤, 겨우 비용을 마련한 나는
마음속으로 수십 번이나 아내의 놀란 얼굴을 떠올리며
혼자 웃고, 또 웃었다.


상하이로 향하는 차 안,
인천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
그리고 집으로 향하는 새벽 버스 안.

나는 잠들 수 없었다.
눈은 감았지만, 마음은 쉼 없이 움직였다.
머릿속은 아내와 아이의 얼굴로 가득했고,
가슴은 사랑을 전할 준비로 벅찼다.


새벽 5시 30분.
도어록 소리를 듣고 장모님이 가장 먼저 나와 나를 반겨주셨다.
아내와 아이는 아직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나는 씻은 뒤 장모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기다림 속의 떨림을 다독였다.


1시간쯤 지났을까.
작은 소리가 방 안에서 흘러나왔다.
아들의 투박한 옹알이.
난 조심스럽게 방문 앞으로 다가가 조용히 문을 열었다.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우어어—’

아빠를 알아본 걸까?
뒤이어 아내가 잠이 덜 깬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잠시의 정적.

“... 뭐야?”

“나 왔어, 여보.”

아내는 안경을 더듬어 찾아 쓰며 다시 묻는다.
“왜 여기 있어?”
“서프라이즈.”

그 말에 눈이 동그래진다.
“아니, 이 시간에 어떻게 여기 있어? 돈은? 아파서 일찍 잔다며. 몸은 괜찮아?”


그렇다. 내 아내는 대문자 T다.

대문자 F인 나와는 달라도 많이 다르다.

그럼에도 우린 서로를 사랑한다.


서프라이즈가 끝났을 무렵, 아내는 말했다.
“나 어제 새벽 2시에 육아 퇴근했어.”
아내의 눈이 붓고, 얼굴이 피곤함으로 가득한 이유를 알았다.

“이제 내가 애기 볼게. 여보는 오늘 푹 자.”

“지금 잠 다 달아났는데 뭘 자라고 해...”

“아무튼, 오늘이랑 내일은 여보 하고 싶은 거 다 해.
집에 있으면 안 쉬는 거 내가 너무 잘 아니까, 무조건 약속 잡고 나가. 아, 내일 저녁은 약속 잡으면 안된다.”

“내일 저녁은 왜 안 돼?”

“내일 저녁은 여보 스케줄 있어.”

“또 뭐 했는데... 나 서프라이즈 싫어하잖아. 얼른 말해.”

결국 이번에도 내가 졌다.


“뮤지컬 예매했어.”

“무슨 뮤지컬? 어디서?”

“팬텀. 세종문화회관.”

“나 안 보고 싶어. 그리고 서울이야? 멀잖아. 피곤해…”

“취소하면 수수료도 있고, 여보 좋아하는 박효신 나오는 회차로 예매했는데?“

“... 박효신?”

순간, 아내의 눈빛이 달라진다.
“그럼 좀 얘기가 다르지.”
입가엔 미소가 번진다.


약 한 시간쯤, 나는 서프라이즈의 전말을 설명했다.
그리고 그제야 대문자 T 아내는 안심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아들은 아빠를 잊지 않았다.
한 달 가까이 떨어져 있었지만,
“아빠빠— 아빠 아아아”
연신 소리를 내며 반겼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였다.
아이는 자꾸만 나를 붙잡고 웃었다.
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던 나였지만,
신기하게도 피곤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오길 잘했다.
정말 잘했다.
마음속에서 그렇게 되뇌었다.


아내 그리고 아이와 이틀을 꽉 채워 보내고,

아내가 집을 비운 사이 아이를 홀로 케어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달리기 시작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건 중국에서 홀로 떨어져 지내는 삶의 공허함을 견디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우울과 무기력에서 벗어나기 위한 도망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나는 나를 구하기 위해 달렸던 것이다.

그렇게 믿고 있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 불도 켜지 않은 채 어두컴컴한 내면에 숨어 하루를 마무리하고,

또 의욕 없는 흐리멍덩한 눈으로 하루를 시작해 출근하는 삶을 벗어나야 했다.

바로 그때 달리기가 내 앞에 나타났고,

난 본능적으로 달리기라는 '동아줄'을 잡아챈 것이다.

달리기는 확실히 내 삶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몸과 마음의 근력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난 왜 달리는 가에 대한 답을 잘못 알고 있었다.


이제는 안다.

내가 왜 달렸는지를.

내가 왜 달려야 하는지를.


그 힘의 근원은, 내 안에만 있지 않다.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고,
내가 지키고 싶은 이름이 있다.

나는 남편이고, 아빠이며,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이름들을 품은 사람이다.


평소 같았으면 이 살인적인 일정을 마치고 중국에 돌아왔을 때 난 녹초가 되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달리기를 시작한 난,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짐정리와 빨래를 마친 후,

난 어느새 달리고 있었다.

그것도 지금껏 느껴본 적 없는 최상의 컨디션으로.

5km PB(개인 최고 기록)도 달성했다.


그렇게 난 오늘도,
가족을 향해 달린다.


Run To Re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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