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줄여도
위잉- 처억- 위잉- 처억-
대형 코인 세탁기가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다채로운 빨랫감들이 서로 뒤엉켜 상승과 낙하를 반복하는 모습을 바라본다. 묘한 안정감이 드는 장소다.
분명 빨랫감이 빠져나오지 않도록 빨래망을 아주 단단히 고정했는데, 아니 그랬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어느새 풀려버린 빨래망 입구를 뚫고 나와 상하좌우로 마구 내쳐지는 처제의 빨간 니트 카디건이 눈에 들어온다. 뭐가 문제였지? 뭘 잘못했지? 언제나처럼 문제의 원인을 나에게서 찾는다. 그러다 문득 어제 통화할 때 들은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내가 물었다.
”야 이렇게 눈이며 강풍이며 빙판길이며 날씨가 안 좋은데, 하늘길 찻길 바닷길 다 막힌 판국에 부산을 간다고? 뉴스 좀 봐봐. “
친구는 여느 때와 같이 침착했다.
”그런 거 다 따지고 걱정하고 살면 어떻게 사냐 아무것도 못할 텐데. 그냥 가는 거지 뭐. “
그렇다. 내가 걱정이 많은 건지도 모른다. 너무 많은 것들을 예민하게 받이들이고 문제라고 인식하는 걸 지도 모른다. 나보다 걱정이 많은 아내를 위로할 때면 나도 모르게 초긍정 마인드가 장착이 돼서 스스로 세상 아무 걱정 없이 사는 사람인듯한 느낌이 나를 휘감아 정말 아무 걱정이 없어지는 경험을 여러 번 했다. 하지만 느낌뿐이었나보다. 아니면 현실로 불어닥친, 혹은 아직 오지 않았지만 곧 올 것만 같은 문제들 앞에선 나도 어쩔 수 없는 것일지도..
걱정을 그렇게 해서 어떻게 사냐는 친구 말이 당시엔 이해되지 않았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빨래망이 열려 빨래가 세탁기 안을 휘젓고 다니는 모습을 보고야 이해가 됐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일어날 문제를 완벽하게 예측하고 대비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걱정은 사실 쓸데가 없다. 이런 결론에 도달하자 나를 괴롭히던, 나와 아내를 괴롭히던 모든 걱정, 문제들이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걱정을 하나도 하지 않고 살기가 불가능한 것처럼 일어날 일을 완벽하게 예측하고 대비하기 또한 불가능하다. 그러니 걱정을 조금만 줄여보자. 영원히 오지 않을 문제를 걱정하며 스트레스받을 이유는 없으니. 이 한 가지만 인지하고 있어도 삶이 조금 더 살만해지지 않을까?
코인 건조기를 돌리고 나간 앞 손님의 빨래 건조가 다 되었는데, 돌아오지를 않는다. 기다릴까, 빼내고 내 빨래를 건조할까. 또 고민하고 앉아있다. 그래도 이 사태를 미리 알고 걱정하지는 않았음에 감사하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