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규츠비 Apr 09. 2023

[기러기의 일기 7]

괜찮아

괜찮아?


문득 네가 묻는 이 말에


괜찮아


라며 나는 간신히 말하지만,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무너질 것 같은 건 너인데


'너의 이름은'으로 한국에서 인기를 얻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후속작 '날씨의 아이' OST 'We'll Be Alright(괜찮아)'에 나오는 가사다. 두 차례 영화를 본 후 OST를 한 달가량 달고 살면서도 느끼지 못했었는데, 어제 원작 소설을 다 읽고 난 후 세 번째로 보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오면서 한글 번역 가사가 자막에 떴을 때 심장을 관통하는 듯한 깊은 찡함과 함께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이어진 가사.


너의 '괜찮음'이 되고 싶어, '괜찮음'이 되고 싶어.


너를 괜찮게 하고 싶은 게 아냐.


너에게 있어서의 '괜찮음'이 되고 싶어.


한국어로 표기된 일어 가사를 읽으며 따라 부르던 난, 이 구절에 다다랐을 때 결국 울음을 쏟고 말았다. 아내를 향한 내 마음을 이토록 잘 표현했던 노래가 있었던가.



'날씨의 아이'는 '너의 이름은'이 380만 관객, 최근 개봉한 '스즈메의 문단속'이 400만 관객을 돌파한 것과 비교하면 100만도 채 되지 않는 관객 수를 기록해 흥행했다고 말할 수 없는 작품으로 치부된다. '너의 이름은'으로 이미 한국에 많은 팬층을 확보한 상태에서 제작한 '날씨의 아이'였지만, 예상보다 성적은 저조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날씨의 아이'라는 작품에 너무 많은 애정이 간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아직 접하지 못했기 때문에 섣불리 말하기가 좀 그렇지만, 확실히 '너의 이름은' 보다는 애착이 가는 작품임에 틀림이 없다.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 개봉하면, 또 그 영화가 보고 싶어 지면 영화로 내 상상력을 제한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소설을 먼저 읽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애니메이션의 경우에는 원작 소설이 있는 경우가 영화보다 드물기도 하고, 애니메이션 영화의 특성상 실사 영화에서 제한될 수밖에 없는 효과들을 충분히 잘 살려서 맘껏 표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에 굳이 원작 소설을 먼저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그리고 사실 원작 소설이 있는지도 몰랐다. 그러다 자주 찾는 알라딘 인터넷 서점 E-BOOK LIST에 날씨의 아이 원작 소설이 뜨는 것을 보고 냉큼 구매해 버렸고, 2차 관람을 마친 후 한 달가량 OST를 귀에 달고 살았던 난 OST를 들으며 원작 소설을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그렇게 책과 OST를 함께 접하며 또 다른 감동을 받고 난 후 이어진 3차 관람에서 책, 영화, OST를 통해 신카이 마코토 감독과 RADWIMPS가 주는 100배가 넘는 감동에 심취해 버렸다.


모든 콘텐츠가 보는 이, 듣는 이로 하여금 각자가 처한 상황, 각자의 감정에 맞는 느낌과 감동을 선사하듯, 나에게 있어 '날씨의 아이'는 환경이나 기후 문제에 대한 메시지보다는 사랑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로 느껴졌고, 나와 내 아내가 처해있는 상황이 이 작품과 겹쳐져서 더 큰 감동으로 다가왔던 듯하다.



앞서 소개한 '괜찮아'라는 곡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날씨의 아이' 구상을 마친 후 각본을 RADWIMPS의 노다 요지로에게 보냈을 때 노다 요지로가 회신으로 보내온 두 곡 중 한 곡이며,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이 곡을 영화 엔딩곡으로 선정했다고 한다. 들으면 들을수록, 가사를 음미하면 음미할수록 깊게 파고든다.


난 그저 흐르는 하늘 물속에 가로누워

불평이나 기포를 내뱉고 있었어


내 인생이 그랬다. 아내와 만나는 것, 결혼을 하는 것 말고는 다른 목표나 꿈을 잃은 상태였고, 그저 흘러가는 대로 허우적거리며 살아가던 나였다. 그리고 그런 삶 속에서 불평불만만 가득했다. '내 인생은 왜 이모양이야?'라든가, '내가 그렇지 뭐.'라는 식이었다.


세상이 너의 작은 어깨에 기대어 있는 게

나한테만은 보여서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하고 있으면


괜찮아? 라며 네가 문득 묻고

괜찮아 라며 간신히 대답하지만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무너질 것 같은 건 너인데


그랬다. 거듭된 난임 시술의 실패와 3차 시술 후 유산으로 인해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가장 힘든 것은 아내인데, 매번 힘든 일을 겪고 통화를 할 때면 언제나 우는 쪽은 나였고, 씩씩한 건 아내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가장 힘든 건 아내인데, 그 작은 몸으로 힘든 일들을 홀로 겪고 있음에도 그 안쓰러움과 미안함에 내가 울음을 터뜨릴 듯한 얼굴을 보이면 오히려 나를 위로한다.



값싼 꿈에 놀아나 여기까지 왔어

이 목숨의 무목적함에 화가 나지만


네가 있으면 아무 말도 못 하는 내가 있었어

네가 있으면 뭐든 하는 내가 있었어


그랬다. 내가 현재 지금의 내 인생이라는 트랙에 놓여있는 이유는 보이는 것만 좇아 살아왔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것에 한눈이 팔려 여기에 이르렀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 내 선택의 결과이다. 그리고 이내 아무런 목적 없이 살고 있는 내 모습에 화가 났다.


하지만 아내를 떠올리면, 아내와 함께 있으면 난 부족할 게 없었다. 불평하고 있을 시간도 없었다. 뭐든 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아내가 있으면 정말 뭐든 이뤄낼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며, 출근 전 퇴근 후 지친 몸을 일으켜 세워 움직이게 하고 꿈을 향해 나아가게 만든다.


내가 의지할 만한 사람이 아닌 건 충분히 알고 있지만,

내 어깨라도 괜찮다면 맘대로 써도 좋아.


중략


잡기에도 모자란 조그만 나의 흔해빠진 커다란 꿈은

너의 '괜찮음'이 되고 싶어, '괜찮음'이 되고 싶어.


너를 괜찮게 하고 싶은 게 아냐.

너에게 있어서의 '괜찮음'이 되고 싶어.


내 마음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아내가 맘껏 내 어깨에 기대어 '괜찮음'을 느낄 수 있는 넓은 가슴과 어깨를 지니지는 못했지만, 기꺼이 다 내주고 싶다. 그런데 그 마음이 아내가 나에게 기대어 괜찮아졌으면 하는 마음이 아니다. 내가 아내에게 있어 진정한 '괜찮음'과 '행복'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무엇이 우리를 덮쳐온다 해도

분명 우리는 괜찮을 거라고


나는 오늘부터 너의 '괜찮음'이니까.


매일 아침 눈을 뜰 때, 매일 밤 잠이 들기 전 눈을 감고 되뇐다. 괜찮다고. 다 잘 될 거라고. 이미 그렇게 정해져 있다고. 내년 이맘때쯤엔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그리고 사랑스러운 아내를 닮은 아이와 함께 셋이서 함께하고 있을 거라고.


그래. 우린 분명 괜찮을 거야. 내가 너의 '괜찮음'이니까. 우리가 함께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기러기의 일기 6]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