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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츠비 Apr 23. 2023

[기러기의 일기 9]

별의 조각

노래 '별의 조각'은 가수 윤하의 6번째 정규앨범 'End of Theory'에 수록된 9번째 곡이다. 이 노래를 들으면 윤하님의 깊은 사색에서 우러나오는 그녀의 심경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고, 또 그와는 별개로 나 자신에게 주는 다른 의미가 생겨나서 살아가는 힘을 얻게 되는 것 같다. 전체 가사를 게재한 후 개인적으로 느끼는 그녀가 가사에 담은 깊은 의미와 나에게 주는 다른 의미로 나누어서 써보려 한다.




무슨 이유로 태어나

어디서부터 왔는지

오랜 시간을 돌아와

널 만나게 됐어


의도치 않은 사고와

우연했던 먼지덩어린

별의 조각이 되어서

여기 온 거겠지


던질수록 커지는 질문에

대답해야 해


돌아갈 수 있다 해도

사랑해 버린 모든 건

이 별에 살아 숨을 쉬어

난 떠날 수 없어


태어난 곳이 아니어도

고르지 못했다고 해도

나를 실수했다 해도

이 별이 마음에 들어


까만 하늘 반짝이는

거기선 내가 보일까

어느 시간에 살아도

또 만나러 올게


그리워지면 두 눈을 감고

바라봐야 해


돌아갈 수 있다 해도

사랑해 버린 모든 건

이 별에 살아 숨을 쉬어

난 떠날 수 없어


태어난 곳이 아니어도

고르지 못했다고 해도

내가 실수였다 해도

이 별이 마음에 들어


언젠가 만날 그날을

조금만 기다려줄래

영원할 수 없는 여길

더 사랑해 볼게


돌아갈 수 있다 해도

사랑해 버린 모든 건

이 별에 살아 숨을 쉬어


난 떠날 수 없어

태어난 곳이 아니어도

고르지 못했다고 해도

내가 실수였다 해도

이 별이 마음에 들어


낮은 바람의 속삭임

초록빛 노랫소리와

너를 닮은 사람들과

이 별이 마음에 들어




이 노래에서 윤하 님이 그간 참 힘겨운 공백기간을 가졌다는 것이 느껴졌다. 가수들은, 특히 그녀와 같은 싱어송 라이터 공연을 통해 팬들과 만나고 소통함으로써 존재의 이유를 찾고 또 계속 창작 활동을 해나갈 수 있는 동력을 얻는다고 생각하는데, 지난 몇 년간 코로나로 인해 공연을 비롯한 많은 활동에 제약이 생기면서 얼마나 어두운 터널을 걸어왔을지 나 같은 사람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것 같다.


난 이 노래에서 별의 조각이 윤하 님 본인을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그리고 '너'는 바로 팬이 아닐까 한다. 활동을 하지 못해 팬들과 거리가 생기고 의도하지 않은 공백기를 갖게 되면서 가수라는 직업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얼마나 많이 했을까. 많은 우연과 의도치 않은 일들도 있었기에 '별의 조각'이 이 자리까지 왔는지(그녀가 자신의 위치까지 왔는지) 설명할 수 없고, 다시 돌아갈 곳, 즉 별(스타)이 아닌 삶으로의 회귀도 고민할 만큼 힘든 상황에 처해 있지만, 사랑하는 '너'의 존재가 그녀로 하여금 자신이 이 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깨닫게 하기에 그 자리에서 떠나지 않고 계속 별의 조각으로 살아갈 것임을 노래한다.


그렇게 코로나라는 긴 어둠의 터널을 버텨낸 그녀는 역주행 신화를 기록한 '사건의 지평선'이라는 노래와 더불어 그 곡이 포함된 이 앨범으로 정말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힘을 전해주었다. 과거 그녀의 많은 노래들을 좋아하고 많이 들었지만, 이번 앨범이 나에게 그토록 특별하게 다가온 이유는 그녀와는 또 다른 이유로 내가 어둠의 터널을 걸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강제적 공백기의 고통을 창작으로 승화해 명반을 만나는 기쁨을 선사해 준 그녀에게 너무나도 감사한 마음으로 박수를 보낸다.




난 세상에 어떤 존재이고, 이 세상에 내가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 멀리 우주에서 보면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미미한 존재인데, 우주까지 나가지 않더라도 대자연의 눈으로만 바라봐도 작디작은 미물일 뿐인데, 과연 내 인생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가끔 이렇게 답을 찾기 어려운 근본적인 질문을 나 스스로에게 던질 때가 있다. 보통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지 못하고 제자리에 멈춰 서서 주저앉지도 그렇다고 뒤돌아 가지도 못할 때 이 질문들을 떠올리는 것 같다.


작년 여름부터 겨울까지 이어진 나만의 암흑기가 꼭 그랬다. 잠시 우리 부부에게 아이가 찾아왔던 두 달 남짓한 시간 동안 조금씩 회복하고 다시 삶의 활력을 찾아나가고 있었지만, 아이가 이내 다시 하늘로 돌아갔을 때 숨을 쉬고자 수면 위로 힘차게 헤엄치던 난 올라가던 속도보다 100배 1000배 빠른 속도로 다시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 질문을 해대기 시작했다. '나'라는 아주 작은 존재가 세상에 어떤 영향을 끼친다고 세상은 날 이렇게 힘들게 하는 걸까. 가만히 놔둬도 해를 끼치지 않고 조용히 살아갈 수 있는데. 왜 세상과 삶은 이런 시련과 고통을 안겨주며 힘들게 하는 걸까. 


그때 윤하 님의 이 앨범, 이 노래를 만났다. 그녀는 노래를 통해 나를 위로했다. 내가 선택한 일들과 의도치 않게 일어난 일들이 합쳐져 지금의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내 인생, 내가 서있는 이 자리가 실수에 의한 것이라고 해도 내 삶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해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그랬다. 내가 지금 내 삶 위의 바로 이 자리에 서있는 것의 이유와 원인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세상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하는 아내가 내 옆에 있다. '널 사랑하는 마음 하나만큼은 세상에서 내가 제일이야.'라고 당차게 얘기하던 30에 막 들어서던 내가, 40이 된 시점에 그 사랑과 함께하고 있다. 이 생각에 다다르자 더 이상 던질 질문이 없었다. 모든 질문의 답은 원래부터 내 안에 있었다. 내가 스스로 태어날 곳과 살아갈 인생을 선택하지는 못했다고 해도 이 인생에서 만난 내 최고의 사랑과 함께하는 인생을 살아가는 지금, 어쩌면 난 그 누구보다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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