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에 더해져야 하는 것
모든 사람은 개개인이 다 다르고, 각기 지닌 성향과 취향이 있으므로 존중하고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갖고 살고는 있지만, 나 스스로가 세워놓은 '상식선'이라는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느끼면 존중과 이해심이 사라짐과 동시에 짜증과 화가 밀려오곤 했다. 그리고 그 짜증과 화를 주변 사람들에게 가감 없이 표출하며 암묵적인 동의를 구하고 있었던 나 자신의 모습이 갑작스레 떠오를 때면 이불 킥을 하며 왜 그랬을까 후회를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이미 표출한 감정과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게 마련이다. 이런 일들을 여러 번 겪다 보니, 그리고 그 경험이 40년이 조금 안 된 인생을 살면서 제법 많이 쌓이다 보니 얼마 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읽다가 유독 한 구절이 많이 와닿게 되었다.
" 판단을 하지 말라. 그러면 네가 피해를 입었다는 생각이 사라질 것이다. 그런 생각이 사라지면, 피해도 사라질 것이다. "
최근 이 구절을 다시금 떠올리고 '나는 아직도 멀었구나' 하는 생각을 들게 한 에피소드가 있다. 해외에 사는 나와 아내가 COVID-19로 인한 입국 후 격리 문제로 1년여 만에 한국 땅을 밟는 날이었다. 인천 공항에서 자가격리 지역까지 이동하는 방역 버스 안에서 '그 사람'을 보았다. 확실히 이전보다 입국자 수가 급격히 감소했고, 격리 지역으로 가는 방역 버스에는 나와 아내를 포함하여 4명뿐이었다. 뒤쪽으로 가서 널찍하게 떨어져서 착석하라는 기사님의 말씀이 있은 후 나와 아내는 뒤쪽에 자리를 잡았고, 다른 두 사람은 꽤나 앞쪽에 자리를 잡았다. '그 사람'이 내 눈에 들어온 것은 한창 가족과 지인들에게 무사 귀국 소식을 전하던 찰나였다. 핸드폰과 창밖을 번갈아 쳐다보며 연락을 돌리던 순간 내 시야에 '그 사람'의 발이 출현했다. 그 순간 찾아온 불편한 감정이란...... 나는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사람이 몇 없는 방역 버스이고, 그 앞자리에 아무도 앉지 않았다지만, 그래도 여러 사람이 이용하는 버스인데 저렇게 신발을 벗고 앞자리 머리 받침대에 아무렇지 않게 발을 올린다고? 그것만으로도 이미 상당히 불쾌했으나 발은 시작에 불과했다. 아주 크진 않지만 귀를 거슬리게 하는 말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발원지를 찾아 시선을 옮기니 여지없이 '그 사람'이 거기 있었다. 발을 올린 아주 편안한 자세로 핸드폰 영상을 보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이 영상의 볼륨을 키워놓았던 것이다. 얼굴을 볼 수 없어 나이를 짐작할 수는 없었지만, 공중도덕을 잘 모르는 젊은 사람이려니 생각이 들어 혀를 차면서 내 귀에 이어폰을 꽂아 불편한 소음을 차단했다.
방역 버스에서 내린 우리는 버스 터미널에서 자가격리 주소지까지 이동을 도와주는 지역 보건소에서 보내준 차량에 탑승했다. 나와 아내와 바로 '그 사람'이 같은 차량에 탑승하게 되었고, 우리 짐이 많아 '그 사람'을 먼저 탑승케 한 후 아내를 차량에 올려 보내고 짐을 실으려고 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명상록의 이 구절이 불현듯 내 머리를 스치면서 지나간 것이다. 우리 짐은 무거웠고, 또 개수도 많았다. 하지만 협소한 차량에 짐을 싣고 세 사림이 다 탈 수 있는 공간이 쉽사리 확보되지 않았고, 아내를 태운 나는 짐을 싣기 위해 혼자 끙끙거리고 있었다. 그 순간 '그 사람'이 나섰다. 아주 시원시원한 목소리와 힘찬 몸짓으로 '저 주세요.' 하며 자기 자리에 무릎을 꿇고 앉은 자세로 우리 짐을 하나씩 번쩍번쩍 들어 올려 자신의 짐 위로, 또 공간을 만들어가며 실어주는 것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고, '그 사람'이 베푼 도움의 순길이 너무나 감사했다. 격리 장소까지 차에 앉아 이동하면서 명상록의 이 구절을 곱씹었고, 몇몇 행동만 보고 그 사람을 '판단'했던 나 자신이 한없이 부족한 사람으로 느껴졌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안 줄 생각만 했지 다른 사람을 돕는 것에는 인색했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반성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모든 사람을 몇 가지 단편적인 모습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경험이었다.
우리 모두는 단 몇 가지 단어로 정의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는, 세상 그 어느 것보다 복잡하고 어려운 인간들이다. 누구나 완벽할 수는 없기에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부여하는 용인의 정도를 모든 사람에게 적용할 수 없고, 내가 정해놓은 상식의 기준을 다른 이들에게 똑같이 적용할 수도 없는 일이다. 물론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상식과 공중도덕의 범위는 있을 것이나, 개인이 세워둔 판단의 잣대로 섣불리 타인을 판단하다 보면 분명 오류가 발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매 순간 판단을 하지 않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기는 하나, 단편적인 모습만을 보고 판단하는 일은 최대한 줄여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