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가족이 되어 간다.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가족' 타이틀을 단 글의 시작으로 이보다 제격인 신조어가 또 있을까 싶다. 우리 모두가 한 번쯤은 경험하지 않았을까? 답답한 마음에 지인에게 가족 험담을 하다가도, 듣고 있던 지인이 맞장구를 치거나 한 술 더 뜨면서 험담을 하면 순간 뜨끔하며 '네가 뭔데 우리 가족 일에 함부로 그런 말을 하지?'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경험 말이다. 그렇다. 우리 가족은 나만, 우리 가족 구성원만이 깔 수 있다. 가족 구성원 외의 사람으로부터는 마치 까방권(까임 방지 권리)이 있는 것처럼 까임이 발생하는 순간, 속에서 무언가 훅 하고 올라오게 된다. 마치 나는 험담을 하지 않았는데 다른 이만 우리 가족의 험담을 한 것처럼.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경험을 통해 우리 스스로 우리 가족의 구성원임을 자각하게 되는 것 같다.
이렇듯 가족이라는 것은 참으로 묘하다. 실컷 싸우고 욕하고 험담을 하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지지하고 보호하고 응원한다. 내가 잘해도, 잘 못해도 언제나 든든히 내 편이 되어주는 가족들. 그래서 난 가족이라는 꿈을 갖게 되었다.
어릴 적 우리 가족은 대가족이지만 핵가족이었다. 친가, 외가 모두 많은 형제자매들,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까지. 명절이면 큰 집에 모여 북적북적한 명절을 보내곤 했지만, 어느 순간 돈을 이유로 모두 남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떨어져 나온 네 가족. 그 와중에 홀로 먼저 하늘로 떠나신 아버지. 결국 남은 셋. 엄마, 누나, 나. 당시 사춘기를 맞은 난 주변 친구들의 경제적 여유가 부럽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보다도 더 부러운 것이 있었다. 그것은 가족이었다. 아버지의 부재, 자연히 멀어진 친척들. 친구들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평범한 일상, 평범한 대화 주제가 나에게는 한없이 무거웠고, 그 평범함이 너무나도 부러웠다. 그래서였을까. 친구들이 '사'자 들어가는 직업을 꿈꾸고, 일류 대학 진학의 꿈, 일류 대기업 취업의 꿈을 꿀 때 난 현실에서 동떨어진 채 '가족'이라는 너무나도 평범한, 그렇지만 너무나도 멀기만 한 꿈을 꾸었다.
그렇게 가까우면서도 멀기만 했던 '가족'이라는 꿈은 정말 꿈처럼 내게 다가왔다. 마치 정해진 인연이었던 것처럼 내 아내가 내 손을 잡아주었듯이, 내 아내의 가족이 언제 남이었냐는 듯 나를 가족으로 품어주었다. 다시 아빠가 생겼고, 아내를 꼭 닮은 엄마가 한 분 더 생겼으며, 마구마구 퍼주고 싶고 도움을 주고 싶은 동생도 둘이나 생겼다. 항상 겨울을 살았기에 내 한 몸 따뜻하게 할 줄만 알던 놈에게 모두가 함께 있으면 애쓰지 않아도 겨울을 날 수 있는 온기가 생긴다는 것을 알게 해 준 우리 가족.
장모님과 장인어른, 아니 엄마, 아빤 오늘도 나와 아내에게 말씀하신다. 우린 한 번도 싸운 적 없어. 너희들도 싸우지 마라. 그리곤 말씀이 끝나기가 무섭게 진심을 다해 투닥거리시는 두 분.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눈을 맞추며 미소 짓는 나와 아내. 이 장면은 언제까지나 내 인생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행복한 장면으로 기억될 것 같다.
가족이라는 꿈을 이루게 된 지금, 난 이제 다른 꿈을 꾼다. 우리 가족이 더 행복해지는 꿈. 풍요로움 속에서 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꿈. 분명 오늘은 어제보다 꿈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갔다고 믿는다.